'3대 명품 그룹' 리치몬드가 '러브콜' 날린 K패션 기업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코오롱FnC의 사명에 붙은 영문은 ‘패션과 컬처(문화)’의 줄임말이다. 요즘 말로 K패션의 세계화가 이 회사의 사명(使命)이다. 내년이면 출시 50년을 맞는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는 지난해 중국 매출만 약 2000억원에 달한다. 토종 골프웨어인 왁(WAAC)은 일본에 브랜드를 수출한데 이어 미국에도 진출했다. 유석진 코오롱FnC 대표(사장·사진)는 “1963년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생산한 만큼 K패션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르다”며 “K패션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해법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3대 명품 그룹' 리치몬드가 '러브콜' 날린 K패션 기업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2년 간 확 바뀐 조직 문화

코오롱FnC는 지난해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매출은 1조181억원으로 전년 대비 17% 성장했고, 2020년 107억원의 영업손실은 작년 말 385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벌써 388억원을 찍었다. 유 대표는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펜데믹 기간 중에 조직을 디지털 중심으로 확 바꾼 결과물”이라며 “꾸준하게 중국 등 세계 시장을 두드린 것이 실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코오롱FnC의 혁신은 유 대표의 전임자이자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던 이규호 코오롱글로벌 부사장 때부터 시작됐다. 유 대표는 “이 부사장 주도로 2020년에 직급제를 없앴다”며 “고참 임원들이 여러 브랜드를 묶어서 관리하던 사업부 시스템을 없애고, 대신에 각 브랜드 매니저가 최종 의사 결정까지 할 수 있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당장 성과가 나지는 않더라도 잠재력이 풍부한 '시리즈' 등 6개 브랜드는 사내 벤처처럼 키우기 위해 아예 사장 직속으로 뒀다. 연초에 예산과 앞으로 2~3년에 대한 큰 그림, 전략에 합의가 이뤄지면 브랜드 운영은 실무자에게 온전히 맡기는 방식이다. 유 대표는 “WAAC이 대표적으로 성공한 사례”라며 “최근 별도 법인으로 분사시켰다”고 말했다.

◆해외 유수 브랜드가 인정한 K디자인 역량

전임자가 뿌린 씨앗을 토대로 유 대표는 인사에도 파격을 줬다.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코오롱스포츠의 디지털 마케팅실장을 겸직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 대표는 “가장 외형이 큰 코오롱스포츠(올해 6000억원 매출 예상)를 통해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의 경험을 축적해 다른 브랜드로도 확산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시장에서 이기는 확률을 최대로 올리는 것이 디지털 전환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룹 지주사에서 투자·전략 업무를 주도했던 경험을 살려 유 대표는 코오롱FnC의 영역을 글로벌로 확대하는데에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지포어 등 명품 브랜드를 여럿 보유한 리치먼드그룹이 해외 동반 진출을 제안하는 등 잭니클라우스, 프랑의 이로 등 유명 해외 패션 회사들이 코오롱FnC의 상품 기획력과 디자인 역량을 높이 사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로 본사는 아예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를 함께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을 정도다. 유 대표는 “내년 50주년을 맞는 코오롱스포츠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프랑스 주요 백화점에 입점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합작사가 우리에게 늘 요구하는 것은 한국적인 디자인과 마케팅”이라며 “교류가 많이 줄긴 했지만 중국 패션 시장 역시 여전히 기회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변화는 K패션의 세계화에도 중요한 의미라는 평가가 나온다. ‘맨땅에 헤딩’하듯 한국 브랜드를 무작정 해외로 가져가거나 반대로 해외 유명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와 판매만하는 데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유 대표는 “시장을 알려면 각종 데이터가 필요한데 이를 혼자하기는 어렵다”며 “WAAC만 해도 내년엔 PGA골프쇼에 참여해 현지 파트너를 물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즘 유 대표의 또 다른 화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다. 그는 이를 “나일론을 처음 만든 회사의 책임감”이라고 표현했다. 2012년에 ‘래코드’라는 재활용 패션 브랜드를 만든 건 일종의 ‘결자해지’차원이었던 셈이다. 코오롱FnC가 패션업계 ESG 경영의 원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유 대표는 “디지털 전환도 결국은 ESG 경영의 일환”이라며 “당장은 어렵겠지만 수요를 예측해 재고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제조 방식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