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판정] 증거만 1천546건…10년 총력전 끝 사실상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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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BC에 외환은행 매각하려던 론스타, 제동 걸리자 2012년 6조원대 소송 제기
정부는 관계부처 대응단·전담조직 만들어 맞대응 장장 10년이 걸린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대한민국 정부의 국제소송이 31일 우리 정부의 사실상 승리로 끝이 났다.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사건 중재 판정부는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요구한 금액의 약 4.6%만 인정했다.
그간 정부는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소송 준비에 470억원을 투입하며 론스타의 법리 공세에 총력전을 벌인 끝에 혈세로 론스타에 거액을 배상할 뻔한 불상사를 막아냈다.
◇ 20년 묵은 론스타-정부 악연…거액 차익에도 ISDS 소송 제기
론스타와 한국 정부 간 분쟁의 시작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의 지분 51.02%를 1조3천834억원에 인수했다.
외환은행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줄곧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2003년에는 현대그룹 부실채권 문제, 자회사 외환카드의 적자 문제 등으로 대규모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태였다.
외환은행의 2대 주주였던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외환은행 증자를 포기하고 정부와 함께 매각을 추진했는데, 이때 인수에 나선 곳이 바로 론스타였다.
하지만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놓고 잡음이 일었다.
당시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국내 은행을 인수할 수 없었는데, 론스타는 일본에 골프장과 예식장 등 산업자본 계열회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금융당국은 2003년 외환은행 자기자본비율(BIS)이 8% 밑으로 떨어져 부실이 예상되자, 은행법 시행령상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를 인정해 론스타의 인수를 승인했다.
이후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론스타의 산업자본 요건에 대해 금융당국이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고, BIS 비율이 고의로 낮게 보고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2005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관여했던 경제관료와 은행 경영진 20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센터는 "론스타가 인수제안서를 제출한 이후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는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넘기려고 은행법을 확대해석하고, 은행 주주 자격이 없는 사모펀드에 '헐값'을 받고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이듬해 론스타의 인수를 두고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 수사 정국이 지속됐고, 론스타는 투자 자금 회수를 위해 외환은행을 되팔려는 협상을 계속했다.
2007년 론스타는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5조9천억원대의 매각 계약을 체결했지만, 한국 정부의 승인은 늦어졌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과 관련한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외환은행 재매각을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금융감독위원회의 입장이었다.
결국 2008년 HSBC가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해 매각은 무산됐고, 론스타는 2012년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지주에 3조9천157억원에 넘겼다.
거액의 차익을 얻었음에도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매각에 실패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2012년 11월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당초 더 높은 가격에 계약을 체결했던 HSBC에 매각하지 못해 손해를 봤다는 취지다.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46억7천950만달러(6조3천136억원)에 달했다. ◇ 10년간 다툼…관계부처TF 설치·총 470억원 투입해 대응
ICSID는 2012년 12월 론스타 제기 사건을 등록했고, 이듬해 5월 조니 비더 런던국제중재법원 부원장을 재판장으로 하는 중재 재판부 구성을 마쳤다.
재판부는 2013년 10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서면 심리를 진행했다.
정부와 론스타 양측은 증거자료 1천546건, 증인·전문가 진술서 95건 등을 제출하며 서면 공방을 벌였다.
이후 2016년 6월까지는 미국 워싱턴DC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총 4차례 심리가 진행됐다.
2020년 6월에는 윌리엄 이안 비니 전 캐나다 대법관이 새 의장중재인으로 선임되면서 같은 해 10월 화상회의 방식으로 질의응답이 이뤄졌다.
그해 11월 론스타가 우리 정부에 협상액 8억7천만 달러를 제시하고, 협상안을 수용하면 ISDS 사건을 철회하겠다는 제안이 오기도 했으나 정부는 공식 협상안이 아니라고 보고 거절했다.
이후 사건을 계속 심리하던 ICSID는 소송 제기 후 3천508일째인 지난 6월 29일 최종적으로 절차 종료를 선언하면서 심리는 끝이 났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론스타와의 법정 다툼에 전력을 다해왔다.
소송액이 6조원에 이르는 만큼 자칫 패소할 경우 막대한 국민 혈세를 외국 자본에 빼앗겨 나라 재정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2년 5월 론스타가 중재의향서를 낸 직후 국무총리실장(현 국무조정실장)을 의장으로 하는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대응해왔다.
여기에는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금융위원회, 국세청이 참여했다.
법률대리인으로는 법무법인 태평양과 아놀드앤포터를 선임해 대응 논리 개발에 주력했다.
론스타 이후에도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ISDS 제기가 이어지자 2019년 4월 정부는 법무부 법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국제투자분쟁대응단을 구성해 관계부처 협업체계를 마련했다.
중요 의사결정 등이 필요할 때는 국무조정실장 또는 법무부 장관이 주재하는 국가투자분쟁 관계부처회의를 운영해 대응 방안을 점검했다.
더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 2020년 8월 법무실 산하에 ISDS 사건 대응 전담조직인 국제분쟁대응과도 신설했다.
변호사 자격을 가진 10여명이 팀을 꾸려 소송에서 정부를 대리하는 로펌을 지휘·감독하고, 분쟁 사건의 증거 수집, 서면 작성, 심리기일 참석 등의 실무를 맡았다.
정부가 올해 6월까지 법률 자문비, 중재 비용 등 소송 준비에 쓴 비용은 약 470억원이다. /연합뉴스
정부는 관계부처 대응단·전담조직 만들어 맞대응 장장 10년이 걸린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대한민국 정부의 국제소송이 31일 우리 정부의 사실상 승리로 끝이 났다.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사건 중재 판정부는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요구한 금액의 약 4.6%만 인정했다.
그간 정부는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소송 준비에 470억원을 투입하며 론스타의 법리 공세에 총력전을 벌인 끝에 혈세로 론스타에 거액을 배상할 뻔한 불상사를 막아냈다.
◇ 20년 묵은 론스타-정부 악연…거액 차익에도 ISDS 소송 제기
론스타와 한국 정부 간 분쟁의 시작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의 지분 51.02%를 1조3천834억원에 인수했다.
외환은행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줄곧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2003년에는 현대그룹 부실채권 문제, 자회사 외환카드의 적자 문제 등으로 대규모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태였다.
외환은행의 2대 주주였던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외환은행 증자를 포기하고 정부와 함께 매각을 추진했는데, 이때 인수에 나선 곳이 바로 론스타였다.
하지만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놓고 잡음이 일었다.
당시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국내 은행을 인수할 수 없었는데, 론스타는 일본에 골프장과 예식장 등 산업자본 계열회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금융당국은 2003년 외환은행 자기자본비율(BIS)이 8% 밑으로 떨어져 부실이 예상되자, 은행법 시행령상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를 인정해 론스타의 인수를 승인했다.
이후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론스타의 산업자본 요건에 대해 금융당국이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고, BIS 비율이 고의로 낮게 보고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2005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관여했던 경제관료와 은행 경영진 20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센터는 "론스타가 인수제안서를 제출한 이후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는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넘기려고 은행법을 확대해석하고, 은행 주주 자격이 없는 사모펀드에 '헐값'을 받고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이듬해 론스타의 인수를 두고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 수사 정국이 지속됐고, 론스타는 투자 자금 회수를 위해 외환은행을 되팔려는 협상을 계속했다.
2007년 론스타는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5조9천억원대의 매각 계약을 체결했지만, 한국 정부의 승인은 늦어졌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과 관련한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외환은행 재매각을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금융감독위원회의 입장이었다.
결국 2008년 HSBC가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해 매각은 무산됐고, 론스타는 2012년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지주에 3조9천157억원에 넘겼다.
거액의 차익을 얻었음에도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매각에 실패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2012년 11월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당초 더 높은 가격에 계약을 체결했던 HSBC에 매각하지 못해 손해를 봤다는 취지다.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46억7천950만달러(6조3천136억원)에 달했다. ◇ 10년간 다툼…관계부처TF 설치·총 470억원 투입해 대응
ICSID는 2012년 12월 론스타 제기 사건을 등록했고, 이듬해 5월 조니 비더 런던국제중재법원 부원장을 재판장으로 하는 중재 재판부 구성을 마쳤다.
재판부는 2013년 10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서면 심리를 진행했다.
정부와 론스타 양측은 증거자료 1천546건, 증인·전문가 진술서 95건 등을 제출하며 서면 공방을 벌였다.
이후 2016년 6월까지는 미국 워싱턴DC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총 4차례 심리가 진행됐다.
2020년 6월에는 윌리엄 이안 비니 전 캐나다 대법관이 새 의장중재인으로 선임되면서 같은 해 10월 화상회의 방식으로 질의응답이 이뤄졌다.
그해 11월 론스타가 우리 정부에 협상액 8억7천만 달러를 제시하고, 협상안을 수용하면 ISDS 사건을 철회하겠다는 제안이 오기도 했으나 정부는 공식 협상안이 아니라고 보고 거절했다.
이후 사건을 계속 심리하던 ICSID는 소송 제기 후 3천508일째인 지난 6월 29일 최종적으로 절차 종료를 선언하면서 심리는 끝이 났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론스타와의 법정 다툼에 전력을 다해왔다.
소송액이 6조원에 이르는 만큼 자칫 패소할 경우 막대한 국민 혈세를 외국 자본에 빼앗겨 나라 재정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2년 5월 론스타가 중재의향서를 낸 직후 국무총리실장(현 국무조정실장)을 의장으로 하는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대응해왔다.
여기에는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금융위원회, 국세청이 참여했다.
법률대리인으로는 법무법인 태평양과 아놀드앤포터를 선임해 대응 논리 개발에 주력했다.
론스타 이후에도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ISDS 제기가 이어지자 2019년 4월 정부는 법무부 법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국제투자분쟁대응단을 구성해 관계부처 협업체계를 마련했다.
중요 의사결정 등이 필요할 때는 국무조정실장 또는 법무부 장관이 주재하는 국가투자분쟁 관계부처회의를 운영해 대응 방안을 점검했다.
더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 2020년 8월 법무실 산하에 ISDS 사건 대응 전담조직인 국제분쟁대응과도 신설했다.
변호사 자격을 가진 10여명이 팀을 꾸려 소송에서 정부를 대리하는 로펌을 지휘·감독하고, 분쟁 사건의 증거 수집, 서면 작성, 심리기일 참석 등의 실무를 맡았다.
정부가 올해 6월까지 법률 자문비, 중재 비용 등 소송 준비에 쓴 비용은 약 470억원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