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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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제레미 그랜섬 GMO 회장이 주식시장의 ‘슈퍼 버블(대형 거품)’이 아직 터지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인플레이션이 상반기 증시 하락을 주도했다면 하반기에는 펀더멘털(기초체력) 악화가 주요 문제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랜섬 회장은 31일(현지시간) 투자 노트에서 “이번 여름 랠리는 전형적인 베어마켓 랠리(약세장 속 일시적 상승) 패턴에 부합한다”며 “과거에도 슈퍼 버블이 터지기 전에 주식시장은 손실의 절반 이상을 회복해 투자자들을 유혹한 뒤 하락세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의 슈퍼 버블은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주식·채권·주택 시장이 원자재 충격, 매파적 미국 중앙은행(Fed)과 맞물려 형성됐다”며 “미국 증시는 슈퍼 버블의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했다.

그랜섬 회장은 시장의 거품을 정확히 예측하는 투자자로 유명세를 떨쳐왔다. 그는 2000년 닷컴 버블 붕괴와 2008년 주택시장 거품 등을 예견하며 월가의 전설적 인물로 여겨져 왔다. 올 초에도 그랜섬 회장은 S&P500지수가 50%가량 폭락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랜섬 회장에 따르면 슈퍼버블 붕괴는 몇 단계를 거쳐 발생한다. 먼저 거품이 형성된 뒤 올 상반기처럼 증시가 급락한다. 이후 약간의 반등세를 보이지만 펀더멘털 악화로 시장은 저점까지 떨어진다. 그는 향후 기업 실적 부진, 이익률 하락으로 증시가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랜섬 회장은 “중국의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식량 및 에너지 위기, 기록적인 재정 긴축 등 펀더멘털이 엄청난 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며 “슈퍼버블의 붕괴가 시스템 전체를 씻어내기 전까지 경제적으로 꽤 어려운 시기를 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잭슨홀 회의 이후 월가에서는 비관론이 점점 확산하고 있다. 기업 실적의 하향 조정이 본격화하면서 증시가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현재 주가에 경기 침체와 기업 실적 둔화에 따른 위험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투자자들은 이제 Fed가 아니라 실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Fed의 통화 긴축이 경제를 강타하기 시작한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하락과 기업 실적 하향 조정이 증시의 추가 하락을 주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주식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Neutral)’에서 ‘비중축소(Underweight)’로 낮췄다. 마이클 스트로백 크레디트스위스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투자자들은 앞으로 경제성장 둔화, 경기침체 가능성 증가, 인플레이션 상승, 각국 중앙은행의 고강도 긴축 등의 위험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몇 달 동안 기업 실적의 하향 조정이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