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씨주택
고씨주택
제주를 찾는 이들은 언제나 마음이 급하다. 짧으면 1박, 길면 1주일. 봐야 할 것은 많고 가야 할 길은 멀기 때문이다. 제주의 시작인 원도심 제주시는 대부분 여행객이 공항을 오갈 때 스쳐 지나가는 도시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2020년 들어 시작된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옛 제주와 새로운 제주가 만나 독특한 공간들이 생겨났다. 해안도로를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일주하는 뻔하디뻔한 정통 코스가 식상한 당신. 빠듯한 일정에 한두 지역만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제주 시내에 머물러보자.

▷고씨주택=제주시 관덕로 17길 27의 1

제주시 원도심에서 가장 먼저 가볼 곳은 고씨주택이다. 산지천변에 자리 잡은 근대 가옥인 고씨주택은 1949년 일본식 건축 기법을 혼용해 지은 전통 제주 가옥이다. 바깥채와 안채를 따로 지어 두 채가 서로 마주 보게 한 독특한 구조가 특징이다. 그사이에는 자그마한 마당을 놓았다. 일본식 건축 기술로 지었지만 그 안의 기능은 전통 제주 민가를 닮았다. 최근 복원 공사를 통해 안거리는 제주사랑방으로 쓰이고 있고, 밖거리는 제주책방으로 시범 운영 중이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면서 읽는 책 한 권이 어쩌면 나의 인생을 바꿔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리듬 앤드 브루스=제주시 무근성 7길 11

고씨주택을 나와 10여 분을 걸으면 리듬 앤드 브루스가 보인다. 옛날 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이색적인 카페로 리모델링 이전 이름은 쌀다방이었다. 외관은 허름해 보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빈티지한 색다른 공간이 등장한다. 목욕탕 시절 쓴 타일과 조명이 어우러져 묘하다. 에그타르트와 패션프루트가 들어 있는 에이드가 유명하다. 2층으로 올라서면 쇼룸이 보이는데 귀걸이와 향수, 패브릭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우진해장국=제주시 서사로 11

빈티지 감성을 채웠다면, 이제는 주린 배를 채울 차례다. 3분 거리에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입소문이 자자한 우진해장국이 있다. 방송 프로그램 수요미식회로 더욱 유명해진 고사리 해장국이 주인공이다. 해뜨기 전부터 시작해 자정까지 항상 사람이 붐벼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만 입장할 수 있다. 60여 개 좌석의 식당 뒤편에는 대형 솥들이 쉴 새 없이 김을 뿜으며 해장국을 팔팔 끓이고 있다. 4월이면 제주도 지천에 자라는 고사리와 돼지고기를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푹 끓여 만든다. 진한 국물맛과 죽 같은 식감은 그 옛날 배곯던 시절의 제주를 기억하고 있다.

▷모퉁이옷장=제주시 중앙로 12길 40

제주 대표 빈티지숍 모퉁이옷장은 ‘효리네민박’에서 이효리가 아이유를 데리고 갔던 옷가게로 유명하다. 하늘색 외벽에 핫핑크색 문을 가진 이국적인 이곳은 마치 협소주택처럼 좁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작은 골목 같은 내부가 등장한다. 공간은 좁지만 천장이 높아 답답하지는 않다. 동화 속에 등장할 것만 같은 미니어처 집에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제주의 감성을 입어볼 수 있다.
관음사(왼쪽)
도두봉에서 바라본 제주 시내(오른쪽)
관음사(왼쪽) 도두봉에서 바라본 제주 시내(오른쪽)

▷관음사=제주시 산록북로 660

차로 20분 거리의 관음사는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해 더 유명해졌다. 제주에서도 아름답기로 손에 꼽히는 절인 관음사. 동자승 석상이 늘어선 입구는 보는 것만으로 평온한 느낌을 준다. 일주문을 지나면 길옆으로 빼곡한 나무가 심겨 있어 마치 비밀의 정원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제주도민의 풍요와 안락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황금 미륵불의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속에 남은 손톱만큼의 앙금도 녹아 사라진다.

▷도두봉, 도두마을=제주시 도두일동 산1

제주시 최고의 인생샷을 찍으러 가는 곳이다. 관음사에서 다시 30분을 차로 가면 제주시의 숨은 비경 도두봉이 나온다. 방호벽을 무지개 벽화로 꾸민 해안도로는 아름다운 사진 촬영 장소로,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로 유명하다.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오름인 도두봉은 섬머리 도두봉공원이라고도 부른다. 바다와 공항, 도두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높이 67m밖에 안 돼 누구나 금방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최고 인기 스폿은 ‘도두봉 키세스존’. 나무터널 입구가 마치 초콜릿 키세스 모양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다. 커플들의 사진 명소라 항상 대기줄이 길다. 모든 연인이 영원의 사랑을 속삭이는 곳, 그들의 결말도 해피엔딩이기를.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