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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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같은 교정에 있는 고등학교에 당연히 진학할 줄 알았다. 입시를 앞둔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심하게 다투셨다. 화를 참지 못한 아버지는 집안 살림을 모두 부숴버렸다. 그러곤 깨진 그릇 조각들이 널린 방으로 나를 불러 "서울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여느 때 같으면 꿇어앉히고선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으셨을 텐데 그날은 딱 그 한마디뿐이었다.

며칠 뒤 아버지가 정해준 서울의 고등학교에 가서 입학시험을 봐 합격했다. 합격증을 받아 집에 돌아와서야 어머니께 내가 서울로 가게 된 속사정을 들었다. "그 여편네한테 널 맡겨놓고 서울을 제집 드나들 듯하려는 게지." 자식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심정이었을 어머니의 목소리엔 울분과 설움이 묻어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화강암을 채석해 서울로 실어 보내는 사업을 하셨다. 서울 남산 석축의 질 좋은 화강암은 아버지가 납품한 것들이다. 서울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던 아버지에게 여자가 생겼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서울에 다녀오시는 날엔 어김없이 우리집에 싸움이 났다. 다행히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아버지는 그분과 헤어졌는지 나를 외숙모댁에 맡겼다. 내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오게 된 연유다.

우리집에 평화가 찾아온 후 아버지는 내게 서울 진학에 관해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다. 고사성어 '동산태산(東山泰山)'을 말씀하시며 서울로 가야 하는 이유를 강조했다. 이 성어는 그때이후 아버지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공부하라'는 말은 거의 들은 적이 없다. 아마 이 고사성어를 인용하신 자체가 학업 독려였던 거 같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라 당신의 수첩은 물론 책상 앞에도 정성껏 써 붙여 두셨다. 심지어 스스로 호를 '동산(東山)'으로 정하셨다. 아버지 방에는 '동산재(東山齋)'란 편액을 걸어 두셨다. 내가 아들을 낳던 날 아버지는 '돌림 자'를 뺀 나머지 이름에 '동녘 동(東)'을 쓰라고까지 하셨다.

'동산태산'은 '높은 곳을 향해 끝없이 나아가겠다'라는 각오로, 사람은 끊임없이 견문을 넓혀야 함을 역설한 말이다. "공자께서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기셨고,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기셨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泰山而小天下]." 맹자(孟子) 진심(盡心) 상편에 나온다. 맹자는 '이미 한없이 넓은 바다를 본 사람에게 강물을 보여주더라도 그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말로 유학의 도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했다. 또 '그런 학문은 흐르는 물이 반드시 빈 웅덩이를 다 채우고서야 나아가듯 단계적이고 쉼 없는 노력에서 나온다'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 향상심(向上心)이 그것이다. 향상심이 있어야 꿈을 목표로 바꾸고 한 발짝이라도 정진할 수 있다. 향상심이 없으면 꿈은 다만 헛된 욕망으로 남을 뿐이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지려는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는 자존감을 높인다.

세상은 보는 만큼 보인다. 향상일로의 마음으로 견문을 넓히려 노력하는 사람에겐 세상이 더 넓고, 더 깊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는 물론 손자에게까지 물려주고자 했던 인성은 쉼 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향상심이다. 잠시 게을리하면 사그라드는 게 향상심이다. 동산태산이야말로 향상심을 항시 일깨워 준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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