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담배 좀" 얘기했다가 경찰까지 출동 [오세성의 아빠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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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성의 아빠놀자(17)
놀이터로 나온 아이들, 간접흡연 노출
담배 유해물질은 100m 밖까지 확산
'반경 10m' 금연구역, 아이들 보호에 부족
놀이터로 나온 아이들, 간접흡연 노출
담배 유해물질은 100m 밖까지 확산
'반경 10m' 금연구역, 아이들 보호에 부족

퇴근길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 아파트 단지에서 어린아이들이 내지른 소리가 들렸습니다.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면서 하는 얘기였습니다. 아이들을 불러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한 아이가 "놀이터에 갔더니 담배 냄새가 나더라구요. 엄마가 담배 냄새가 나는 곳에서는 놀지 말라고 해서 다른데로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분명 담배냄새는 나고 있었는데 말이죠. 냄새를 따라가니 놀이터 근처 담벼락 너머에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가 있더군요. 흡연자와 놀이터 사이 거리는 10m 정도였습니다.

집에 와서 부인에게 칭찬 좀 들어볼까 하고 얘기를 해주니 '큰일날 소리'라고 핀잔을 들었습니다. 흡연장소를 이동해 달라거나 담배를 꺼 달라고 요청했다가 봉변당한 경우들이 동네에서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엄마들이 얘기를 주로 하는데, 요청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위협적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심지어 욕설을 듣거나 보란듯이 줄담배를 피우기까지 한다고 하네요. "당신이 뭔데 끄라 마라냐", "담배 피울 권리를 지키겠다", "금연 표시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냐" 등의 얘기도 듣는다고 합니다.
한 누리꾼은 "아이를 데리러 학원 차가 서는 승강장에 갔더니 흡연자가 있어 이동을 요청했다"며 "흡연자가 화를 내면서 어느 동에 사는지 확인하겠다고 따라오는 통에 관리사무소로 가 도움을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누리꾼도 "놀이터 정자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 커플이 있어 금연 구역에선 담배를 꺼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며 "여성 흡연자가 당신이 뭔데 꺼라 마라 하느냐고 소리 지르는 탓에 경비아저씨가 오고 경찰도 출동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관련 법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건강증진법은 전국 어린이 놀이시설을 금연시설로 지정하고 반경 10m 이내 흡연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나 공원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도 이에 해당합니다. 금연시설이나 금연 구역에서 흡연하면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연구팀은 "미국 등에선 간접흡연이 태아발육 억제, 영아 돌연사 증후군, 아동 기관지 천식, 중이염을 비롯한 뇌혈관 질환, 암 등을 일으키는 위험인자로 알려졌다"며 간접흡연의 위험성을 강조했습니다.
단속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금연 구역에서의 흡연은 각 보건소 보건지도과나 건강증진과 등의 부서에서 단속합니다. 서울 강남구 보건소에 따르면 단속은 현장 목격이 원칙입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과태료가 부과할 수 없다고 하네요. 신고받은 담당 부서에서 현장에 오기까지 걸릴 시간을 생각하면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눈앞의 흡연자를 처벌할 방법은 사실상 없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림을 바꾼다고 큰 효과를 내리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금연 구역 범위를 확대하고 단속의 실효성도 높이기 위한 정부와 국회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