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선미, 그룹 트와이스 나연, 뉴진스 혜인 /사진=SNS, 스튜디오춤 캡처
가수 선미, 그룹 트와이스 나연, 뉴진스 혜인 /사진=SNS, 스튜디오춤 캡처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통 넓은 바지, 펑퍼짐한 농구 셔츠, 니삭스, 캡 모자, 더듬이처럼 내린 앞머리까지 흑역사로 기억될 법했던 스타일들이 '힙'한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때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로 1980~1990년대 복고 열풍이 불었던 데 이어 최근에는 2000년대 감성을 자극하는 Y2K가 새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Y2K는 연도를 뜻하는 'Year'에 숫자 2, 1000을 나타내는 'Kilo'가 결합한 말로, 밀레니엄 버그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만 인식하던 컴퓨터가 2000년이 되면 '00'만을 인식해 1900년과 혼동하면서 사회적 대혼란을 가져올 거라는 우려 속에서 탄생한 말이다. 그 안에서 혼란함과 자유분방함이 공존하는 '세기말 감성'이 자라났다.

이미 패션계에서는 찢어진 청바지, 헐렁한 와이드 팬츠, 배꼽티, 바지를 살짝 내려 입는 로우라이즈까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유행한 Y2K 스타일이 주목받았다. 여성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가 올해 1∼2월 고객들의 검색·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Y2K'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61배(6043%), 'Y2K'가 포함된 상품의 거래액은 18배(176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히 시각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고 대중문화 전반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모양새다. 특히 빠르게 반응이 오는 분야는 대중가요다.

최근 컴백한 블랙핑크는 올드스쿨 힙합 무드가 강조된 신곡 '핑크 베놈(Pink Venom)'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음악 팬들은 리사에서 제니로 이어지는 랩 파트 부분에서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 음악이 떠오른다며 뜨거운 반응을 보내고 있다.
음원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브의 신곡 '애프터 라이크(After LIKE)'는 1978년 글로리아 게이너(Gloria Gaynor)가 발표한 명곡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를 샘플링해 친숙함을 더했다. 후렴 부분이 아닌, 간주를 활용해 개성을 살림과 동시에 킥 리듬을 기초로 EDM, 팝, 하우스 등 다양한 장르로 화려함을 강조했다.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은 Y2K 패션을 선보이는데, 이는 MZ세대와 X세대를 아우르겠다는 전략이다.

이 밖에도 지코, 트와이스 등이 컴백하며 'Y2K'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올해 데뷔한 신인 뉴진스는 팀 정체성 자체를 뉴트로에 기반해 선보였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한 이들은 스포티한 편한 의상에 긴 생머리, 옅은 화장 등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CD플레이어 모양을 연상케 하는 한정판 앨범 '뉴진스 백'을 선보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어린 팬들은 뉴진스 팝업 스토어에 마련된 CD플레이어를 보며 신기해했고, 30~40대들은 향수에 젖었다. 평균 나이 16.6세인 뉴진스가 'MZ세대와 X세대의 연결고리가 됐다'는 평가는 참으로 신선하다.
현재의 'Y2K' 붐은 옛것을 따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트렌디한 요즘의 것으로 재탄생시킨다는 특징을 갖는다. '뉴진스 백'만 해도 올드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새로운 아이템으로 인지한다. 이는 X세대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아이돌들이 무선이 아닌 줄이 있는 이어폰을 사용하는 모습이 다수 포착되면서 유선 이어폰이 의외의 패션 아이템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요즘 10대들은 레트로가 아닌 뉴트로(New+Retro)다. 옛 감성을 힙한 것으로 가져오되, 지금의 나에 맞춘 새로운 유형을 선호하는 거다. 특히 Z세대는 SNS 활용도도 높고, 적극적인 소비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홍보 측면에서도 재생산 유발 효과가 크다"면서 "과거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아티스트 강조형 굿즈가 인기였다면, 이제는 몰랐던 문화를 받아들이고 개인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이 더 효과적으로 소구된다"고 전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