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지를 생전에 극진히 모셨던 막내아들의 토로다. 장례를 치른 뒤 아버지의 휴대폰에서 "막내는 형제 중에 제일 잘살기 때문에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내용의 녹음을 듣게 된 막내아들 A 씨는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다.
A 씨는 최근 YTN 라디오 '양소영의 변호사 상담소'에 이같은 사연을 제보했다. 그는 "아버지를 오랜 시간 모셨던 건 저였는데,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산 상속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좀 서운하다"고 운을 뗐다.
A 씨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가난한 농부였다. 하지만 삼형제를 키우는 데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던 가장이었다.
아버지의 노력 끝에 삼형제 중 첫째는 아버지 기대에 어긋남 없이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를 졸업, 대기업에 취직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게 됐다.
둘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 기술을 배워 공장에 취직한 A 씨는 성실히 일한 덕에 근무하던 공장을 인수하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행복한 나날 가운데 찾아온 아버지의 암. 삼형제 중 가장 형편이 좋았던 A 씨는 아버지의 투병 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A 씨는 아버지의 병원비뿐만 아니라 아내와 함께 간병까지 도맡아 왔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A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던 중 청천벽력과도 같은 녹음을 듣게 됐다. 아버지가 생전 지인들과 있던 자리에서 휴대폰을 통해 "막내는 제일 잘 살고, 첫째는 대학 공부시키느라 돈을 많이 썼으니, 모든 재산은 둘째에게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겼던 것이다.
아버지의 친구들은 A 씨에게 "유언이니까 형제들은 싸우지 말고 아버지의 뜻을 잘 받들라"고 당부했다고. 끝으로 A 씨는 "아버지의 재산은 모두 둘째 형에게 돌아가는 것이냐"고 조언을 구했다. A 씨의 사연에 대해 김아영 변호사는 먼저 아버지가 남긴 유언은 법적 효력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김 변호사는 "우리 민법에서는 유언의 종류를 법으로 정하고 있고, 유언이 유효하기 위한 요건 역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언의 형태는 '녹음에 의한 유언'일 수 있는데, 내용이 유효하기 위한 요건이 몇 가지 빠진 부분이 있어 법적 효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녹음에 의한 유언이 유효가 되기 위해선 유언자는 ▲재산분할의 방법 ▲재산 분할의 대상 내용 ▲유언자 자신의 이름 ▲녹음을 하는 구체적인 날짜(연월일) 등을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유언을 남기는 당시 증인이 동석했더라도, 증인은 유언자의 성명을 정확하게 얘기하고 '유언자의 진위에 정확하게 합치한다'는 내용까지 말해야 한다.
김 변호사는 "이 같은 사안의 경우에는 똑같은 판례는 없지만, 기존 법원의 입장에서 보면 아마 정확하게 유언의 날짜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령 녹음 일자를 파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요건을 명시적으로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유효성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렇다면 A 씨 아버지의 유언이 무효가 된다면 재산 상속은 어떻게 진행될까. A 씨는 형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김 변호사는 "삼형제가 원래 법으로 정해져 있는 상속분에 따라 상속을 각자 주장을 할 수가 있게 된다"며 "형제들은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각 3분의 1씩 법정상속분에 따라서 상속받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이어 "특히 A 씨의 경우에는 아버지의 오랜 투병 생활 중 병원비라든지 간병이라든지 이런 걸 모두 부담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기여분으로 인정된다"며 "아버지가 남긴 재산 중에서 산정된 기여분과 그 기여분을 제외한 재산의 3분의 1을 합쳐서 가질 수 있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