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적분할 반대주주에 주식매수청구권 부여…소액주주 보호 강화한다
정부가 상장사의 ‘물적분할 후 재상장’ 관행에 제동을 건다.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기업이 일반 주주와 충실히 소통하지 않은 경우 물적분할한 자회사의 상장도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소액주주 권익 3중 보호장치 마련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일반 주주 권익 제고 방안'을 4일 발표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최근 성장성이 높은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한 후 단기간 내 상장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모회사 일반주주는 주주권 상실과 주가 하락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밝혔다.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단계별 일반주주 보호방안 / 자료=금융위원회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단계별 일반주주 보호방안 / 자료=금융위원회
정부는 △주식매수청구권 도입 △공시 강화 △상장심사 강화 등 3중 보호장치를 통해 일반주주 권익을 보호한다는 방침이다.

먼저 상장기업의 주주가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경우 해당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한다. 주주총회에서 물적분할을 반대한 주주들은 물적분할 추진 전의 주가로 회사 측에 주식을 매각할 수 있다. 매각가격은 주주와 기업 간 협의로 결정하며, 협의에 실패할 경우 이사회 결의일 전날부터 과거 2개월·1개월·1주일간 주가를 가중평균해 산출한다.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기업의 공시 책임도 강화한다. 물적분할 추진 기업은 ‘주요사항보고서’에 물적분할의 구체적 목적, 기대 효과, 주주 보호방안 등을 공시해야 한다. 자회사 상장을 계획하고 있는 경우에는 예상 일정 등을 밝히고 추후 상장계획이 변경되는 경우 정정공시해야 한다.

물적분할한 자회사 상장에 대한 심사도 강화된다. 물적분할 이후 5년 내 자회사를 상장하려는 경우 한국거래소가 모회사 일반주주에 대한 보호 노력을 심사한다. 미흡한 경우 상장을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물적분할을 완료한 기업도 분할 후 5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이번에 강화된 상장심사 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정부는 10월까지 기업공시서식과 거래소 상장기준 개정을 마칠 계획이다. 주식매수청구권 도입을 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은 연내 마무리한다.

논란이 됐던 신주 우선배정은 이번 제도 개선안에서 빠졌다. 신주 우선배정이란 자회사가 상장할 때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주식 일정분을 의무적으로 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의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주식을 배정할 것인지 모호하다는 문제가 지적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주 우선배정을 아예 배제한 것은 아니며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며 “이번 대책에 따른 정책효과를 살펴보고 추후 필요하다고 판단될 시 추가적인 주주 보호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앙꼬 없는 찐방' 투자 우려하는 주주

그동안 소액주주들은 물적분할로 인해 권리를 침해당하면서도 아무런 방어권이 없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물적분할이란 신설법인(자회사)이 존속법인의 100% 자회사가 되는 분할 방식을 말한다. 반면 인적분할은 신설법인의 지분을 기존 존속법인 주주에게 똑같은 비중으로 나눠주는 구조다.

물적분할이 국내에 도입된 것은 1998년이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정부가 물적분할이라는 예외 규정을 허용했다. 이에 물적분할은 주로 구조조정 또는 사업부 매각 용도로 활용됐다.

하지만 최근 국내 기업들이 성장성 높은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상장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모회사 시가총액에 자회사의 가치가 이미 반영돼 있는데, 이 자회사가 상장하면서 중복 계상(더블카운팅) 문제가 발생했다. 모회사 일반주주들은 ‘앙꼬 없는 찐빵’에 투자한 꼴이 됐다고 불만을 표했다. 실제 물적분할을 발표한 LG화학, SK이노베이션, 만도 주가는 공시 당일 일제히 급락한 바 있다.

○지나친 규제라는 비판도

다만 물적분할에 대한 규제 강화가 기업의 구조조정과 신사업 진출을 지나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규 사업을 키워서 기업가치를 높이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데 이때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이 효과적인 자금조달 수단이기 때문이다. 차등의결권이 없는 국내에서 인적분할 후 유상증자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자회사에 대한 모회사 지분율이 낮아져 경영권 위협에 노출된다는 설명이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2본부장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통해 탈퇴(엑시트)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자회사 상장 시 주주보호 방안을 추가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은 과도한 이중 규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주요 선진국 가운데 물적분할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라며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지 않는 지나친 규제”라고 덧붙였다.

주식매수청구권이 기업과 일반주주 모두에게 반쪽짜리 대책에 그친다는 의견도 있다. 기업에는 막대한 비용을 유발하고 일반주주에는 탈퇴할 수 있는 권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물적분할한 자회사 주식을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현물배당하는 방안이야 말로 기업과 일반주주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대책”이라고 말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