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라 예산이 적정하게 사용됐는지 점검하는 국회 결산 심사가 11년 연속 법정 시한을 넘겼다. 국회법(128조 2)엔 전년도 예산 결산 심사를 정기국회 개회(9월 1일) 이전에 끝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지난달 29일에야 종합정책질의를 시작했다. 부별 심사와 상임위별 예비 심사도 이제서야 진행하고 있다. 국회는 추석 연휴 전까지 4일 동안 심사를 마친다는 계획이지만, 679조5000억원(추경 포함)의 씀씀이를 다 들여다보기는 물리적으로 힘들다. 무리하게 완료하려 한다면 졸속·부실 심사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가 결산 심사 제도를 도입한 것은 2004년이다. 정부가 예산을 제대로 집행했는지 살펴보고 국민 혈세가 한 푼이라도 낭비되지 않도록 한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정 기한 내 처리한 것은 2011년 딱 한 번이다. 결산 심사가 지연되는 주요 이유는 정쟁과 의원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올해도 국민의힘은 대표 징계 문제로 내홍을 겪느라, 더불어민주당은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에 매몰돼 결산 심사는 뒷방 신세였다.

그러다 보니 결산 심사 때 지적된 내용들을 차기 연도 예산안을 짤 때 반영하도록 한 법 제정 취지는 온데간데없다. 심지어 차기 연도 예산안이 먼저 국회를 통과하고 결산안이 늦게 처리된 적도 있다. 올해도 결산 심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내년도 예산안 편성이 끝나버렸다.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의원들은 지역구 선심성 예산을 챙기는 데는 쌍심지를 켜면서도 혈세가 제대로 집행됐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일반 가정도, 회사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지출 내역을 살펴보고 돈이 허투루 쓰이지 않았는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게 기본이다. 하물며 나라 예산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최근 국회 사무처 업무보고에서 결산 심사를 6월로 당기는 등 개선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매년 이런 주장이 제기됐고, 관련 법안도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아무 진척이 없다. 배임과 다를 바 없다. 대국민 생색내기용으로 법을 만들어 놓고선 지키지도 못하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할 거면 차라리 법을 없애는 게 맞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차기 연도 예산안 심사도 매년 늑장, 부실, 졸속 비판을 받은 지 오래다. 나라 살림 심사 전반에 걸친 개선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