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스탠퍼드대 교수(58)가 현재 세계경제가 오일쇼크에 부닥친 1970년대와 비슷하다는 진단을 내놨다. 전쟁과 경제위기, 시민 사회 불안 등 유사점이 많다는 분석이다.

퍼거슨 교수는 2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금융 충격과 정치적 충돌, 시민 사회 불안 등이 1970년대의 특징인데, 현재도 똑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며 “1970년대보다 지금이 더 심각하고 위기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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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교수는 ‘둠’, ‘문명’ 등을 집필한 작가이자 경제사학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를 거쳐 하버드대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스탠퍼드대 후버 칼리지 선임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과 미국의 공생관계를 다룬 ‘차이메리카(차이나+아메리카)’를 주창한 인물로 유명하다.

퍼거슨 교수는 전쟁이 벌어진 상황이 재연되며 경제위기가 반복됐다고 주장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며 중동 산유국들이 자원을 무기화하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가 1차 오일쇼크에 부닥치며 시장이 요동쳤다. 물류비가 치솟으며 세계 식량난이 심화하기도 했다. 당시 소련과 미국 두 강대국이 국제사회에서 힘겨루기하며 종전이 지연됐다.

올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벌어진 상황도 비슷하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및 석유 등 에너지를 무기화하며 국제 유가가 치솟았다. 퍼거슨 교수는 “과거보다 전쟁 기간이 더 길어지면서 에너지 위기로 인한 타격이 심각할 것”이라며 “당시에도 미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금리를 올렸고,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는 정책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전쟁이 발발하기에 앞서 전조 증상도 과거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오일쇼크가 벌어지기 전인 1960년대 미국의 경제정책이 실패한 게 지난해와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퍼거슨 교수는 “2021년 통화·재정 정책의 실책은 1960년대 정책 실패를 연상시킨다”며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억제되지 않는 점도 같다”고 지적했다.

1960년대 미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이 실패한 걸 겨냥한 발언이다. 1951년부터 1970년까지 Fed를 이끌던 윌리엄 마틴 의장은 금리를 급격히 인상했다. 통화 긴축으로 인한 저성장과 실업률을 감수하고 인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는 정책이었다. 통화정책을 통한 시장 안정화는 실패했고 1979년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13%까지 치솟았다.

과거 교훈에서 달라진 점은 없었다. Fed는 학생용 교육자료를 발간하며 1970년대 통화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때를 ‘대(大) 인플레이션 시대’라 일컬으며 통화정책 입안자들의 무능을 지적했다. 경제가 호황일 때 인플레이션을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대응 속도도 느렸고 Fed의 일부 위원들은 경제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했다는 것이다.

올해 Fed가 보여주는 대처방식도 비슷하다는 비판이다. 퍼거슨 교수는 재난과 위기에 대처하는 인간의 한계를 꼬집었다. 위기는 어떤 패턴이나 질서를 시대순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그는 “최근 코로나19, 인플레이션, 전쟁 등 지구적 재난이 연달아 겹치며 인간이 위기를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 사라졌다”며 “(정책입안자들은) 오로지 평균값(Average)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서 최악의 경우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낙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퍼거슨 교수는 되레 1970년대보다 지금이 더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2020년대가 1970년대에 비해 생산성이 낮아지고, 국가 부채는 더 늘었으며 초강대국 사이의 긴장이 완화될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퍼거슨 교수는 “적어도 과거에는 소련과 미국의 갈등이 진정될 방안이 있었다”며 “지금은 워싱턴(미국)과 베이징(중국) 사이에서 그 어떤 가능성도 보이질 않는다”고 역설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