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현대차와 기아가 최대 희생양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요.

전기차 시대를 맞아 북미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현대차의 꿈이 깨졌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의 대응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산업부 김민수 기자와 함께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정부 차원의 대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습이네요?

<기자> 지난 주 정부 주요부처 실장급 대표단이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만난 데 이어, 오늘 오전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출국했습니다.

정부 차원의 대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겁니다. 통상교섭본부장이 나섰다는 건 한-미 FTA와 WTO 규범 준수 차원에서 대응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9일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하는 데, IRA 관련 성과가 핵심 어젠다가 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앞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지난 달 중순 IRA가 통과된 직후 출국해 2주간 미국에 머물다 지난 주말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정부의 대응이 뒷북이라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워보입니다.

<앵커> 냉정히 따져볼 때 IRA 시행으로 인해 현대차가 입을 피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왜 그런겁니까?

<기자> 당장은 피해가 없을 겁니다. IRA 시행일인 8월 16일 이전 계약물량들은 보조금을 그대로 적용받기 때문이죠.

출고 대기물량을 따져볼 때, 일단 내년 초까지는 보조금 제외에 따른 영향이 숫자로 나타나지는 않을 겁니다.

또 IRA 보조금 요건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테슬라나 포드 같은 경쟁자들 역시 최대 보조금 7500달러의 절반인 3750달러 수준의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게다가 아직까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차종 역시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전기차를 통틀어 20개 모델 뿐입니다.

이 정도면 현대차가 인센티브를 주면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오구요. 현재는 거의 인센티브를 주지 않고 있거든요.

무엇보다 원·달러 환율 계속해서 고공행진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요. 현대차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이죠.

이런 부분을 전반적으로 따져볼 때, 현대차가 한 번 해볼만 하다라는 분석이 나오는 겁니다.

<앵커> 하지만 우려는 여전하지 않습니까? 워낙 경쟁이 치열한 미국 시장인데,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불안 요인 아닙니까?

<기자> 가장 큰 문제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북미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 경쟁에서 새로운 약점이 생겼다는 거죠. 현대차의 부진은 경쟁자들의 약진을 의미합니다.

지금 현대차는 북미시장 전기차 1위인 테슬라를 쫓고 있는 2위 기업입니다. 이번 IRA 시행으로 1위 테슬라가 가장 큰 혜택을 보게 되구요. 현대차를 뒤쫓는 미국 포드와 GM이 반사이익을 보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북미 전기차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부분이 치명적입니다. 전기차를 사는 소비자의 선택지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거죠.

당장 내년부터는 친환경차 연간 누적판매량이 20만 대를 넘으면 보조금을 주지 않는 제한도 사라지는데, 이 역시 테슬라가 가장 큰 수혜를 받게 됩니다.

물론 현대차가 인센티브를 주면서 출혈경쟁을 할 수도 있지만,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합니다.

일단 현대차는 조지아 전기차 공장 완공을 2024년으로 앞당기는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기존 계획보다 반 년 정도 완공을 서두르겠다는 거죠. 당방은 딱히 대책은 없는 상황입니다.

<앵커>미국의 강화된 연비 규제에 대한 대응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벌금이 상당하던데, 어떻게 전망되고 있습니까?

<기자> 기업평균 연비규제, 영어 약자로 일명 CAFE(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 규제라고 하는데요. 바이든 정부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대폭 낮췄던 연간 연비상향 목표치를 다시 평균 8%로 올렸는데요.

한 자동차 회사가 미국에서 파는 모든 자동차의 전체 평균 연비를 따져서 연간 목표에 못미칠 경우, 벌금을 메기는 겁니다.

2024년이라고 하면 23년부터 파는 24년식 차량을 말하는 데요. 24년 평균 목표치를 우리 기준으로 환산하면 리터당 20.7km에 달합니다. 오는 2026년 목표치는 무려 리터당 26km에 달합니다.

아직은 미국에서 대배기량 가솔린 차량을 많이 파는 현대차 입장에서는 맞추기 어려운 수치입니다. 압도적인 연비를 내는 전기차를 많이 팔아야 평균을 맞춰 최대한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는 수준이죠.

제네시스를 많이 팔려면 아이오닉5를 그만큼 팔아야 한다는 건데, IRA 영향으로 전기차 판매에 영향을 받을 경우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목표치 상향에 맞춰 벌금이 크게 올라갔습니다. 목표치에 못미치면 우리 기준으로 리터당 0.2km마다 15달러의 벌금을 미달 차량 판매 대수만큼 내야 합니다. 연비가 리터당 5km 미달하면 대당 370달러의 벌금을 내는 거죠.

현대차가 지난해 미국에서 판 자동차 수가 149만대에 달하는 데, 이 가운데 리터당 20km 연비를 내는 차량은 전기차를 제외하면 거의 없거든요. 벌금 액수가 상당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한 예로 지프·크라이슬러 같은 미국 전통 브랜드를 보유한 스텔란티스 그룹이 이번 규제로 내야하는 벌금이 최대 6억 달러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벌금을 안내려면 목표치를 넘긴 회사들이 파는 크레딧을 사서 연비 부족분을 메꿔야 하는데, 덕분에 테슬라는 벌금이 높아진 만큼 더 비싼 가격에 크레딧을 팔 수 있게 됐습니다.

<앵커> 결국 외교적으로 풀어가는 방법이 가장 좋아보입니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섰는데, 현재 분위기는 어떤가요?

<기자> 미국 현지 분위기를 취재해 보면 쉽지 않아보입니다. 일단 미국 정치권은 이미 국내 반도체나 자동차, 배터리 산업에 상당한 혜택을 준 만큼, 한국이 이 정도는 양보할 수 있지 않느냐는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법 개정 없이는 보조금 정책 변경이 쉽지 않다는 점이 있습니다. 미 의회가 나서줘야 한다는 건데, 11월 중간선거를 코앞에 둔 의원들이 당장 나서 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핵심 제조업 중 하나인데요. 전기차 시대를 맞아 그동안 쇠락했던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다시 재건하겠다는 큰 그림 속에 모든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중국산 원재료가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배터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산 부품과 소재를 쓰는 배터리로 만드는 자동차는 결국 중국산 전기차라는 거죠.

그러니까 미국의 보조금 정책 변경은 단순한 경제 논리가 아닌 미국의 산업정책과 지정학적인 고려가 더 해진 결과물입니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불공정하지만, 10년, 20년 후를 내다본 미국의 지정학적 산업정책의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노련한 경제외교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김민수기자 mskim@wowtv.co.kr
바이든이 깬 현대차의 꿈…연비 규제도 비상 [심층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