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 대상 원격 과외'
이 서비스 모델로 지난해 말에 140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은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설탭'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오누이가 주인공입니다.
태블릿으로 교재화면과 음성을 실시간 공유하는 수업 방식은 딱히 새로워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돋보이는 점은 '다양한 스팩의 학생과 선생님을 보여줄테니 알아서 매칭하라'는 기존 플랫폼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과 교사를 우리가 선별하겠다'는 자신감입니다. 설탭(서울대 선생님+태블릿)이라는 서비스명에도 이런 특징이 배어납니다.
설탭의 비즈니스모델은 얼마나 시장에 먹히고 있을까요. 오누이의 고예진 대표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고예진 대표는 20대 때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고예진 대표는 20대 때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지루한 전공수업, 팽개치고 22살 땐 호주로

"연필의 지우개는 왜 뒤에 달려 있을까? 앞에 있으면 훨씬 편하지 않을까?"
"수저통에서 숟가락을 손으로 꺼낼 필요없이 식탁에 '탁' 내려치면 바로 세팅이 되게 할 수는 없을까?"

6일 긱스와 만난 고예진 오누이 대표(사진)는 초등학생 때부터 심심풀이로 이런 고민들을 했다. 무언가를 만들고 계획하는 게 좋았던 그는 중앙대 도시공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도시공학의 세계는 흐름이 느렸다. 도시 환경을 계획하고 완공하는 데까지 몇 년씩 걸려서다. '빨리 빨리'하는 성격을 가진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던 고 대표는 점점 전공과 괴리감을 느꼈다.

지루했던 고 대표는 2012년 22살이 되자 무작정 호주 서부의 도시인 퍼스로 떠났다. 머리도 식힐 겸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다. 레스토랑, 카페, 바나나 농장 등 다양한 곳에서 일을 했다.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호주의 열기 속에서 일사병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엔 여유롭게 삶을 즐기면서 직업적으로도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홈스테이 주인 할머니께선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화장품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했는데, 너무나도 즐거워 보였다"며 "나도 늙어서까지 주도적으로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현실을 마주했다. 대학교 3, 4학년이 되자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시기였다. 배달의민족 열풍이 불면서 막 스타트업이란 용어가 뜨던 2013~2014년이었다.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에서 열었던 스타트업 인턴 채용 연계 프로그램에 가봤다. 하지만 디자인이나 개발 쪽엔 '스펙'이 없던 그는 빈 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셀 수 없이 다양한 회사들이 있는 걸 보고 본격적으로 스타트업업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보기술(IT) 분야를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변하는 IT업계가 그의 성격에도 딱 맞았다. 4학년을 마치고 SK플래닛의 모바일 인력 전문 양성기관인 T아카데미에 들어갔다. 3개월 동안 교육을 받고 기획·개발·디자인 분야의 교육생들과 함께 앱을 만들어 론칭하는 게 목표였다.

대학생 시절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던 고 대표는 교육 앱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대학생 누나, 오빠들이 문제 풀이를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문제를 촬영한 뒤 앱에 올리면, 대학생 튜터들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그의 첫 아이템인 '오누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원래 T아카데미에 창업을 꿈꾸며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하지만 거기서 은인을 만났다. 선배 창업가들이 교육생들의 아이템을 리뷰해주곤 했는데, 이 때 그의 아이템을 심사해주던 사람이 당시 에듀테크 스타트업 노리를 이끌던 김서준 해시드 대표다. 고 대표는 "김서준 대표가 오누이를 실제 창업해보면 어떠겠냐고 제안을 했다"며 "이후에도 오누이가 '쓸 만한' 서비스가 될 때까지 항상 아낌없이 조언을 하고 투자까지 흔쾌히 해주셨다"고 설명했다.
고 대표의 MBTI는 ENTP다. 점점 ENTJ처럼 변하고 싶다고 한다. 계획적인 'J' 유형이 경영자로서 더 알맞는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고 대표의 MBTI는 ENTP다. 점점 ENTJ처럼 변하고 싶다고 한다. 계획적인 'J' 유형이 경영자로서 더 알맞는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오누이에서 설탭으로... '피봇' 성공

2016년 오누이 법인이 설립됐지만 성장은 쉽지 않았다. 입소문을 타고 월 매출이 2000만원까지 늘었지만 거기까지였다. 과외 시장에서 오누이 플랫폼은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서의 역할에 그쳤다는 게 고 대표의 평가다. 월 2000만원으로는 인건비조차 충당하기 어려웠다. 그 사이 8명까지 늘어났던 직원은 4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한계를 느낀 고 대표는 피봇을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남은 직원들을 설득했다.

단순히 질문과 답변을 넘어, 과외 자체를 온라인으로 만드는 게 구상이었다. 비대면 학습이란 키워드 자체는 트렌드와 맞았다. 하지만 디바이스가 문제였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스마트폰 앱에서 답변을 받아야 했다. 손바닥 만한 화면에서 학생들이 학습이 효율적으로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노트북만큼 화면이 크면서도 휴대가 더 간편한 태블릿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선생님과 학생이 화면을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학생이 문제를 풀고, 필기를 하고, 또 선생님이 화면에 적어주는 풀이법들이 양쪽에 똑같이 나타나게 했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만드는 스타트업인 플링크와 협업했다. 튜터들도 명문대 학생들로 제한해 검증을 거친 뒤 뽑기로 했다. '태블릿'과 '서울대생 선생님'을 합쳐 '설탭'으로 서비스명을 정했다.
"엄마 땐 없어잖아, 설탭!" 최근 배우 박미선과 가수 츄가 함께한 TV 광고도 선보였다.

설레는 공부, 그 시절 '네이트온'처럼

고 대표가 내세운 핵심 가치는 '과외 시장의 혁신'이다. 그는 "기존에 나와있던 서비스들은 학부모와 선생님을 연결해주는 중개 플랫폼 역할만 했다"며 "특히 이 같은 '오픈' 플랫폼 형태에선 원하는 선생님을 일일이 탐색하고, 시범 수업을 진행하는 등 수요자와 공급자 양쪽 모두 비용이 많이 드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설탭은 '클로즈드' 플랫폼을 지향해 학부모에겐 검증된 선생님을, 선생님에겐 성향이 맞는 학생을 매칭해주는 식으로 과외를 '상품화'한다"고 덧붙였다.

우선 선생님의 학력을 서울대·연세대·고려대로 제한했다. 대학 포털의 이메일 계정이나 재학증명서, 졸업증명서를 이용해 1차 서류평가를 거친다. 서류평가를 통과한 지원자는 일종의 시범 과외를 음성 파일로 녹음한 뒤 설탭에 보낸다. 설탭 내부 운영팀이 이를 듣고 수업의 내용, 성향, 발음 등을 평가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체 제작한 규정 테스트를 통해 지원자의 태도도 검증한다. '갑자기 수업 스케줄이 변경해야 할 경우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 학생이 집중하지 못할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대기업에서 진행하는 인적성 평가를 과외 시장에 도입했다. 모든 과정을 거친 지원자들의 평균 합격률은 60% 정도다.

설탭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태블릿을 무상으로 대여받는다. 태블릿이 장벽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게 고 대표의 생각이다. 플랫폼 안엔 '과외티콘'이라는 이모티콘도 넣었다. 직접적인 소통조차 부담스러워 할지 모를 Z세대에 대한 배려다. 고 대표는 "오프라인 과외는 동네 학원보다 비용이 비싼 데다가 낯선 누군가가 우리집을 방문한다는 사실 자체로 학생들이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태블릿이 문제점을 해결한다"고 했다.

학습의 핵심인 콘텐츠 역시 풍부하게 구성했다는 설명이다. 최근 '스마트 콘텐츠'를 내놨다. 게임처럼 학습할 수 있게 만든 도구다. 20분 안팎의 짧은 영상으로 핵심 개념을 강의하고, 난이도별로 맞춤형 문제를 구성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동 채점 기능도 넣었다. 온라인을 통해 선행 학습을 진행한 뒤 선생님과 토론 방식으로 수업하는 '플립 러닝'을 도입했다.
현재까지 지표로 나타난 소비자의 반응은 아주 좋다고 한다. 설탭을 이용해 공부하는 고등학생의 모습.
현재까지 지표로 나타난 소비자의 반응은 아주 좋다고 한다. 설탭을 이용해 공부하는 고등학생의 모습.
지금까지는 효과가 좋다는 게 고 대표의 분석이다. 리텐션(고객유지비율) 지표인 월간 학습 지속률은 90%, 평균 학습 지속 기간은 8개월가량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반적인 온라인 강의의 완강률이 4% 수준에 그치는데, 이는 곧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매는 하지만 소비는 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며 "학생이 꾸준히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생의 태블릿 과외'던 설탭은 '설레는 공부의 시작'이라는 슬로건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이전에 없던, 재밌는, 기다려지는 공부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내년쯤엔 학생간의 커뮤니티 플랫폼도 만들 예정이다. 모르는 문제를 서로 토론하고, 나아가 일상 얘기까지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고 대표는 "내가 학생 땐 방과 후에 무조건 컴퓨터를 켜 네이트온에 접속해 친구들과 소통하곤 했다"며 "설탭을 그런 존재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참, 한가지 더
"SKY 출신 샘만 모았다"…과외 시장 판 바꾸겠다는 이 스타트업 [긱스]
설탭의 동반자... '페이지콜' 개발한 플링크

2015년 문을 연 스타트업 플링크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솔루션인 '페이지콜'을 개발했다. 페이지콜은 화상회의나 온라인 교육에 특화된 도구다.

페이지콜을 이용하면 다수의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화면을 공유하며 글을 쓰거나, 채팅,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다. 영상이나 문서 자료도 공유 가능하다. 글로벌 화상회의 솔루션인 '줌'과 비슷한 형태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학습이 트렌드가 되자 온라인 교육 업체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설탭 역시 페이지콜을 플랫폼에 적용했다.

플링크는 누적 6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스트롱벤처스는 설탭과 플링크에 모두 투자하기도 했다. 지난달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포스트팁스(Post-TIPS)에 선정됐다. 포스트팁스는 중기부 주관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팁스의 졸업기업 중 일부를 선발해 추가 지원을 해주는 제도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