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인덱스, 20년 2개월 만에 최고
가파른 속도 우려…달러 상승 기대감 계속
여기에 유럽 및 중국 경기둔화 우려 등 원·달러 환율 상승 요인이 단기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1400원 진입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다. 정부의 개입 영향력도 약화하고 있어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올라설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3원 오른 달러당 1371.7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는 금융위기 2009년 4월 1일(1379.5원) 이후 1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환율은 장중 1377원까지 치솟으며 5거래일 연속 연고점을 경신했다.
원·달러 환율 폭등을 이끄는 건 '킹달러'(달러화 강세)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 6월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은 이후 긴축 강화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달러화 가치는 연일 오르고 있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10.269선까지 치솟았다. 2002년 6월 19일(110.539) 이후 20년 2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달러 강세 유지될 듯"
전문가들은 높은 환율 수준 만큼이나 가파른 상승 속도를 우려하고 있다. 달러화 강세와 함께 오른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월 이후 무려 120원 가까이 올랐다. 미국 고용지표가 탄탄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Fed가 또 한번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달러화 추가 상승 기대감은 계속 높아지는 상황이다.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보고서를 통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달러화 강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달러화 대비 주요국 통화가치가 대부분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이후 유로화 및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점은 원·달러 환율 상승세를 더 부추기고 있다. 당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점도 문제다. 환율의 급등 요인이 국내 보다는 대외 변수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당국의 입김으로 시장을 진화하기엔 역부족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전날 정부와 한국은행, 금융당국이 모여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구두개입성 발언까지 내놨지만 환율 급등을 막지는 못했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환율 상승 분위기를 반전할 만한 요인이 뚜렷하지 않다"며 "지금 같은 시장에선 정부와 외환당국이 시장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환보유액을 더 공격적으로 투입하는 등 개입 의지를 확실히 보여준다면 1400원 진입 전에 환율 상승세를 꺾을 순 있을 것"이라며 "당국이 환율 수준 및 상승 속도를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지 주목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원·달러 환율 1400원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꼽힌다. 앞서 심리적 지지선인 1350원대를 돌파한 환율이 1370원대로 오르기까지는 불과 3거래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김 연구원은 "이 같은 속도가 유지된다면 원·달러 환율 1400원 진입은 시간문제"라며 "1400원이 뚫린다면 원화를 팔고 달러를 매수하는 추세가 또 한번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달러에 외환보유액도 감소 전환
달러화 강세 여파로 국내 외환보유액은 차츰 줄어들고 있다. 외환보유액은 3월 이후 4개월 연속 뒷걸음치다가 7월 반등했으나 다시 한 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8월에는 한 달만에 약 22억달러 감소했다. 한은은 "미국 달러가 약 2.3% 평가 절상되면서 기타 통화 외화자산의 미국 달러화 환산액이 줄어 전체 외환보유액도 감소했다"고 설명했다.또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내면 환율 방어에 쓰이는 외환보유액이 감소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한은은 국내 외화보유액 규모가 세계 9위라는 점을 들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 등에 대한 우려는 꾸준히 나오는 상황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 1500원 진입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는 상황"이라며 "달러 선호 현상이 더 가속화되면 시장 내 자금 이탈 우려도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환율 수준에 대한 우려를 넘어 물가 상승, 스태그플레이션 등 경제 성장 사이클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고환율은 금융시장 뿐 아니라 실물경제 전반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통상 환율이 높아지면 수입 물가 수준을 올려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입물가 상승분의 3분의 1 이상은 환율 상승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소비자 물가는 3분기 정점을 찍고 내려올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먹거리 물가는 13년4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면서 서민들의 부담이 큰 상황이다.
물가 상승과 자본유출 우려가 커지면 국내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이 커질 수 있다. 또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 특성상 원화 가치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 전 세계 교역 위축 등이 더해져 수출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각각 10% 상승하면 수입은 3.6% 증가하는 반면 수출은 0.03% 늘어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수지에서도 위기 징후가 나오고 있다. 무역수지는 지난 8월 사상 최대 수준의 적자(94억7000만달러)를 기록하면서 14년만에 처음으로 '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튼튼한 만큼 크게 우려할 것 없다는 입장이다. 높아진 환율수준과는 달리 대외건전성 지표들은 큰 변화 없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복합위기 상황의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고 경상수지도 당분간 변동성은 크겠다"면서도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의 해외채권 발행을 통한 외화조달이 원활하고 연간으로 상당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 달성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