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국회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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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을 산 게 불과 2년 전이다. 그런데 2년 만에 또다시 유사한 형태의 미성년자 성 착취 영상물 범죄 정황이 포착됐다. 수법이 더 악랄해졌으며 드러난 피해자 6명 중에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국회 예결위 회의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대검찰청 과학수사부는 디지털 성범죄 수사 지원을 위해 2019년부터 1억9천200만원을 들여 '인공지능(AI) 기반 불법 촬영물 탐지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왜 이를 탐지하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한 장관은 "경찰에 신고했던 것 아닌가"라고 답했고 이에 이 의원은 "AI 기반 불법 촬영물 탐지 시스템이 작동을 왜 안 했냐"고 재차 물었다.

한 장관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다"면서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던 걸로 저는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이 의원은 "아니 경찰에 신고하면 검찰은 전혀 움직이지 않나"라며 "경찰이 신고하면 검찰에 빨리 알려서 AI가 탐지하라고 이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갔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다니"라고 지적했다.

한 장관은 계속 어리둥절해하며 "아뇨 경찰에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았나. 그럼 수사가 진행되는 것인데"라고 했다.

이 의원은 "검찰에 신고해야 (AI 탐지 시스템이) 작동된다면 검찰에 신고하라고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다그쳤다.

이어 한 장관이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잘 안다"고 하자 "무슨 말인지 뭐가 모르나"라고 윽박질렀다.

이 의원은 "그러면 '경찰이 수사해서 검찰 AI 시스템이 작동 안 했습니다. 여러분'이라고 말해라"라고 했고 한 장관은 "아니 피해자가 신고한 것인데 거기서 AI로 감지할 게 (있나)"라고 황당해했다.

결국 이 의원은 "아이구, 정말"이라고 한숨을 쉬며 "(AI 탐지가) 작동한 결과물을 우리 의원실로 내라"고 마무리했다.

이 의원은 이날 '제2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가 계속 발생하고 있으나,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수사 시스템은 인력과 예산의 문제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이 대검에 문의한 결과, 이 시스템을 담당하는 수사관은 단 1명이고, 이마저도 다른 업무를 병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스템 고도화 작업 담당자도 2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 의원은 "디지털 성범죄가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시스템도, 인력도, 의지도 따라가지 못해 어린아이들이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며 "인력 보충과 고도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물 피해를 본 한 미성년자가 지난 1월 추적단 ‘불꽃’ 측에 피해 사실을 알려오면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지난 1월 14살 A양에게 접근해 성 착취물을 찍게 만든 '제2의 n번방' 용의자 '엘'. n번방 운영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웠던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A양에게 접근했다.

추적단 불꽃 활동가인 원은지씨(활동명 ‘단’)에 따르면 미성년 피해자 수는 6명이며, 이들 이외에도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 다른 디지털 성범죄 피해지원 단체 ‘프로젝트리셋’(ReSET)에도 피해 의심 사례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엘’은 2019년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뒤 300개 이상의 성 착취물 영상을 제작·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텔레그램을 이용해 여성들을 유인·협박 후 성 착취물을 제작한 ‘n번방 사건’과 유사해, ‘제2 n번방’으로도 불리고 있다.

문제는 A양이 지난 1월 경찰에 피해 신고했지만, 성 착취가 지속됐다는 점이다.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경찰은 지난달 31일이 돼서야 전담수사팀(TF)을 꾸렸다. 수사팀은 기존 1개 팀에서 6개 팀으로, 수사 인력이 6명에서 35명으로 늘렸다.

경찰은 ‘제2 n번방’ 사건의 주범이 복수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협업해 피해자의 국선 변호인 선임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피해자 대책도 마련한 상태다.

디지털 성범죄 신고 피해 건수 중 1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321명에서 지난해 1481명으로 4배 가까이 늘었고, 올 상반기만 1000명을 넘어섰다.

한 장관은 미성년자 대상 디지털성범죄 관련 대검찰청에 엄정 대응을 주문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