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진 태평양 변호사 "규제 막혀 해외로 가는 삼성·SK…환자중심 정책 절실"
약사, 한약사, 변호사…. 허수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사진)가 보유한 자격이다. 국내 1호 의약전문검사로 유명한 그는 15년간 검찰에서 의약품 리베이트, 불법 사무장병원 등 굵직한 보건 분야 사건을 처리한 뒤 2020년 변호사로 새 삶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법무법인 태평양에 합류했다.

6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유명해진 태평양 대회의실 ‘밍크고래’ 작품 앞에서 허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삼성, SK, 네이버 등이 앞다퉈 진출할 정도로 국내 기업의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력이 좋고 시장성이 충분하지만 규제에 막혀 해외 사업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이해관계자가 아니라 환자를 중심에 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 약대를 졸업한 뒤 1996년 약사 면허를, 1999년 한약제조 자격을 획득한 그는 약사 대신 검사의 길을 택했다. 당초 그가 계획했던 것은 행정고시에 합격해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행시보다 선택의 폭이 넓은 사법고시에 도전했고, 2002년 합격한 뒤 2005년 검사에 임관했다.

허 변호사는 검사로 근무하며 다양한 ‘1호’ 기록을 썼다. 그가 임관하던 때만 해도 약사나 의사출신 검사가 거의 없었다. 보건의료 사건을 두루 맡던 그는 2010년 부산지방검찰청에서 여성 검사로는 처음 강력부에 배치됐다. 이듬해인 2011년엔 첫 번째 의약전문검사로 선발됐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처음 출범한 리베이트 단속반에 배치돼 리베이트와의 전쟁을 이끌었다.

그는 ‘50세가 되기 전 새로운 시작을 해보자’는 친구 조언에 따라 2년 전 로펌 변호사로 합류했다. 지난해 말 태평양으로 자리를 옮겼다. 허 변호사 합류와 함께 태평양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태평양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헬스케어팀을 100명까지 증원하는 등 몸집을 키우고 있다. 헬스케어 분야에 ‘칼’을 빼들었다는 평가다.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김종필 변호사가 헬스케어팀장을 맡았다. 송영주 한국존슨앤드존슨 부사장도 고문으로 합류했다. 코로나19 팬데믹 후 보건의료 분야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본격적인 ‘베팅’을 시작했다.

허 변호사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성장성과 로펌의 역할에 주목했다. 그는 “살아 움직이는 산업에 발맞춰 로펌들이 할 일도 상당히 많다”며 “원격의료에선 환자 설명의무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지만 아직 많은 의료기관이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디지털치료제 사용승인 등 이슈가 많다고 했다.

법적 소송 및 분쟁만 책임지던 로펌의 역할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미약품 JW중외제약의 기술 수출계약, 호텔롯데의 보바스기념병원 출연 등 투자계약, 티앤알바이오팹-존슨앤드존슨의 공동연구계약 등에도 태평양이 참여했다.

최근엔 정부의 규제 완화 움직임에 맞춰 ‘정책 컨설팅’을 위해 로펌을 찾는 기업이 늘고 있다. 허 변호사의 역할은 정책 맞춤형 솔루션 제공자다. 그는 “다양한 전문가그룹과 협업해 정확한 솔루션을 빠르게 낼 수 있는 건 로펌의 장점”이라며 “약대 졸업 이력 등을 살려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