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詩를 끌고 온 줄 알았는데 詩가 나를 끌고 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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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번째 시집 낸 시인 문정희
고교 때부터 백일장 휩쓴 '스타 시인'
서정주가 첫 시집 서문 쓸 만큼 주목
50년 넘게 시인으로 활발히 활동
4년 만에 <오늘은 좀 추운…> 발간
코로나가 뒤바꾼 세상 시에 담아
난해한 표현 없이 쉽게 풀어내
"나만의 문학 산맥을 만들고 싶다"
고교 때부터 백일장 휩쓴 '스타 시인'
서정주가 첫 시집 서문 쓸 만큼 주목
50년 넘게 시인으로 활발히 활동
4년 만에 <오늘은 좀 추운…> 발간
코로나가 뒤바꾼 세상 시에 담아
난해한 표현 없이 쉽게 풀어내
"나만의 문학 산맥을 만들고 싶다"
“늘 새로 태어나기 바빠 해가 기울어 간 것도 몰랐다.”
문정희 시인(사진)은 최근 출간한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 첫 장에 이렇게 적었다. 그의 열다섯 번째 시집이다. 학창시절부터 전국 백일장을 휩쓸었던 문 시인은 시와 함께 반세기를 넘게 보내며 어느덧 일흔다섯 살이 됐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민음사에서 만난 문 시인은 “시는 내 삶 그 자체”라며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시를 썼다는 것, 내 모든 생애가 시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왔다는 게 기쁨이자 자랑”이라고 말했다.
그의 시인 인생은 화려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어린 시인’이라는 말을 늘 들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등단도 하지 않은 여고생의 첫 시집 <꽃숨>에 서문을 써줬다. “반짝 주목을 받다가 사라져버릴 수 있기 때문에 어려서 시집을 낸 건 위험한 짓이었다”고 했지만 시재는 떨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 아시아인으로, 남성 중심 문단의 여성으로, 소수의 인생으로 살아내면서도 시인으로서 정체성을 굳건히 했다.
“요절해버린 천재에 대한 환상도 있었죠. 하지만 나는 꾸역꾸역 장수하고 싶었어요. 미당 선생님이 한 번은 이런 말을 하셨어요. ‘작은 산봉오리는 웬만하면 된다. 산맥은 그러나 만들어야 해.’ 오래오래 쓰다 보면 때로 실패도 있고 뒷걸음질도 치겠지만, 내 경험과 역사를 쌓아서 내 문학을 산맥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끝없이 써도 새로운 ‘시’의 매력은 그를 50년이 훌쩍 넘도록 시인으로 살게 했다. 문 시인은 “내가 시를 끌고 온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시가 나를 끌고 왔다”고 했다.
문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여느 때보다 치열한 고민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2~3년 터울로 시집을 냈는데, 이번에는 4년이 걸렸다. 문 시인은 “이 시집이 혹시 훌륭하다면 50년간의 제 이력이 아니라 이 책에 실린 시들이 훌륭하기 때문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견 시인의 시라는 이유로 후한 대접을 받기보다는 시 자체로 평가받고 싶다는 의미다.
평생 시를 써온 그에게도 코로나19가 뒤바꿔놓은 세상은 낯선 감각이었다. 이런 혼란은 고스란히 시집에 담겼다. 식당에서 체온이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밥을 먹을 수 있었던 ‘비정상적’ 경험들은 오롯이 그의 시 속에 녹아들었다. “세계가 비정상인데/나는 왜 정상이어야 할까.”(‘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 것은 무엇인가’)
그의 시는 난해한 표현 없이 삶의 진실에 접근한다. 현실의 풍경과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시의 재료로 삼는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시인 미셸 콜로는 문 시인의 프랑스판 시집 해설에서 “시에서 괴상한 복장을 벗기는 시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문 시인은 “시가 쉽고 편안하게 읽히기를 바란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운 퇴고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고 말했다.
마침표 하나 찍는 걸 두고 고민과 절망을 거듭하는 과정 또한 시가 됐다. “다 만든 옷을 잘라 미완성을 만든다/그것이 그의 완성이다/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그 언어만이 시라고 생각한다.”(‘디자이너 Y’)
최진석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 해설 ‘기념비의 시학’에서 문 시인에 대해 “시를 낳을 적마다 그는 다른 시인이 됐고, 태어난 시로 인해 또 다른 시인으로 변모해왔다”고 평가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문정희 시인(사진)은 최근 출간한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 첫 장에 이렇게 적었다. 그의 열다섯 번째 시집이다. 학창시절부터 전국 백일장을 휩쓸었던 문 시인은 시와 함께 반세기를 넘게 보내며 어느덧 일흔다섯 살이 됐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민음사에서 만난 문 시인은 “시는 내 삶 그 자체”라며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시를 썼다는 것, 내 모든 생애가 시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왔다는 게 기쁨이자 자랑”이라고 말했다.
그의 시인 인생은 화려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어린 시인’이라는 말을 늘 들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등단도 하지 않은 여고생의 첫 시집 <꽃숨>에 서문을 써줬다. “반짝 주목을 받다가 사라져버릴 수 있기 때문에 어려서 시집을 낸 건 위험한 짓이었다”고 했지만 시재는 떨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 아시아인으로, 남성 중심 문단의 여성으로, 소수의 인생으로 살아내면서도 시인으로서 정체성을 굳건히 했다.
“요절해버린 천재에 대한 환상도 있었죠. 하지만 나는 꾸역꾸역 장수하고 싶었어요. 미당 선생님이 한 번은 이런 말을 하셨어요. ‘작은 산봉오리는 웬만하면 된다. 산맥은 그러나 만들어야 해.’ 오래오래 쓰다 보면 때로 실패도 있고 뒷걸음질도 치겠지만, 내 경험과 역사를 쌓아서 내 문학을 산맥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끝없이 써도 새로운 ‘시’의 매력은 그를 50년이 훌쩍 넘도록 시인으로 살게 했다. 문 시인은 “내가 시를 끌고 온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시가 나를 끌고 왔다”고 했다.
문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여느 때보다 치열한 고민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2~3년 터울로 시집을 냈는데, 이번에는 4년이 걸렸다. 문 시인은 “이 시집이 혹시 훌륭하다면 50년간의 제 이력이 아니라 이 책에 실린 시들이 훌륭하기 때문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견 시인의 시라는 이유로 후한 대접을 받기보다는 시 자체로 평가받고 싶다는 의미다.
평생 시를 써온 그에게도 코로나19가 뒤바꿔놓은 세상은 낯선 감각이었다. 이런 혼란은 고스란히 시집에 담겼다. 식당에서 체온이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밥을 먹을 수 있었던 ‘비정상적’ 경험들은 오롯이 그의 시 속에 녹아들었다. “세계가 비정상인데/나는 왜 정상이어야 할까.”(‘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 것은 무엇인가’)
그의 시는 난해한 표현 없이 삶의 진실에 접근한다. 현실의 풍경과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시의 재료로 삼는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시인 미셸 콜로는 문 시인의 프랑스판 시집 해설에서 “시에서 괴상한 복장을 벗기는 시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문 시인은 “시가 쉽고 편안하게 읽히기를 바란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운 퇴고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고 말했다.
마침표 하나 찍는 걸 두고 고민과 절망을 거듭하는 과정 또한 시가 됐다. “다 만든 옷을 잘라 미완성을 만든다/그것이 그의 완성이다/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그 언어만이 시라고 생각한다.”(‘디자이너 Y’)
최진석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 해설 ‘기념비의 시학’에서 문 시인에 대해 “시를 낳을 적마다 그는 다른 시인이 됐고, 태어난 시로 인해 또 다른 시인으로 변모해왔다”고 평가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