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보 예르비의 마법이 빚어낸 '시벨리우스 감동' [송태형의 현장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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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거장 예르비와 3~5일 내한 공연
경기아트센터에서 마지막 무대
시벨리우스 5번·'슬픈 왈츠' 연주
지휘자·연주자 간 신뢰 돋보여
거장 예르비와 3~5일 내한 공연
경기아트센터에서 마지막 무대
시벨리우스 5번·'슬픈 왈츠' 연주
지휘자·연주자 간 신뢰 돋보여
‘미미미미미미 파파파 솔솔솔~ 미미미미미미 파파파 솔솔솔~’(D장조 기준)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1악장. 현의 반주형 도입부가 시작되자 명연을 예감케 했습니다. 마에스트로의 왼손 움직임에 따라 여리고 유려하면서도 날렵하게 흘렀습니다. 첫날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의 감동이 벌써부터 되살아났습니다. 지난 5일 수원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파보 예르비 &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현장입니다. 3일 서울 예술의전당콘서트홀, 4일 통영국제음악당에 이어 사흘 연속 이어지는 내한 공연의 마지막 무대입니다.
서울·통영 공연과는 달리 2부 메인 곡이 차이콥스키 5번이 아니라 시벨리우스 2번입니다. 원래 인기 있는 레퍼토리이지만 세상에 태어난 지 120주년이 되는 올해 유난히 더 자주 무대에 오르는 작품입니다. 시벨리우스를 즐겨 연주하는 에스토니아 지휘 명장은 이 곡을 어떻게 들려줄지 궁금해 첫날 서울 공연장에 이어 이날 수원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찰떡 호흡’이라고 하나요. 예르비가 2011년 창단한 오케스트라입니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이긴 하지만 에스토니아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패르누 뮤직 페스티벌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예르비와 함께한 단원들입니다. 이 악단에 참여하고 있고, 이날도 무대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은(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은 “다들 마에스트로(파보 예르비)가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좋아서 모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연륜과 관록이 느껴지는 연주자부터 젊은 연주자까지 한눈에 봐도 연령대가 다양합니다. 예르비의 제의를 받고 기꺼이 동참한 단원들이라고 했습니다. 첫날도 그랬지만 이날도 연주하는 모습에서 이들이 얼마나 예르비를 존경하고 신뢰하는지, 예르비가 만들어 가는 음악을 얼마나 좋아하고 즐기는지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지휘자를 둘러싼 현악의 앙상블과 응집력이 빼어납니다. 첫날과 같이 1부와 2부는 에스토니아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시작했습니다. 1부엔 아르보 패르트의 '벤저민 브리튼을 기리는 성가', 2부엔 에르키 스벤 튀르의 '십자가의 그늘에서'를 타악기를 동반한 현악 오케스트라로 들려줬습니다. 음악의 결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서정성을 갖춘 경건한 음악이었습니다. 지휘자의 손짓과 동작에 거의 하나가 돼 움직이는 현악은 다채로운 음색과 변화무쌍한 다이내믹으로 빚어내는 풍성하고 섬세한 음악으로 청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1부에서 이 악단의 단원이기도 한 바이올리니스트 투린 루벨과 첼리스트 마르셀 요하네스 키츠가 솔리스트로 나서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을 들려줬습니다. 솔리스트 간 호흡과 솔리스트들과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이 유난히 돋보이는 연주였습니다. 독주자들이 단원들이어서 그런가요. 이들은 독주자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일원처럼 지휘자의 템포와 동작에 맞춰 연주했습니다. 각자의 개성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기보다 앙상블을 중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같은 곡을 3일 연속 연주해서 그런지 첫날보다는 독주자들의 긴장감과 집중력이 떨어진 듯했습니다. 서로 살짝 어긋나고 흐트러진 대목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호연이라 할 만했습니다. 다시 시벨리우스 2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1부 독주자로 빠졌던 루벨이 악장 옆 자리에 앉고, 키츠가 첼로 파트에 합류하며 오케스트라 진용이 완성됐습니다. 예르비는 확고하게 짜 놓은 시나리오와 설계대로 후기 낭만주의의 풍부한 색채와 작곡가 특유의 북유럽 정서가 담긴 선율이 가득한 작품을 드라마틱하게 이끌었습니다. 역시나 현악이 빼어났습니다. 더블베이스의 진중한 저음을 비롯한 현악기들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적인 앙상블이 목관과 호른 등이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장을 든든하게 깔아줬습니다.
예르비는 폭넓은 완급과 다이내믹 조절로 극적인 표현을 탁월하게 이끌어냈습니다. 중간중간 전체 악기가 쉬는 타이밍도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적절하게 조절했습니다. 차이콥스키 5번이 그랬듯이 시벨리우스 2번도 악장 간 쉼 없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연주했습니다. 1악장이 처음의 반주 음형이 잦아들며 마무리될 무렵 손을 번쩍 들어 팀파니가 바로 울리도록 신호를 보냈습니다. 2악장과 3악장도 잠깐의 사이를 두고 바로 연주했습니다. 베토벤 5번처럼 음악적으로 이어지는 3악장과 4악장의 연결도 극적인 효과를 부각했습니다. 2악장 중간부터 목관 앙상블이 흔들리는 등 관악 파트에서 더러 실수가 나왔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예르비는 끝까지 특유의 절도 있는 동작으로 고양감 넘치는 피날레를 이끌어냈습니다. 다만 장거리를 이동하는 고된 투어 일정 탓인지, 금관이 후반부에 힘에 부친 듯했습니다. 마지막 ‘아멘 종지’에서 ‘아~'에 해당하는 음에 이어 ‘멘~'을 연주하기 전에 이례적으로 거의 한 마디가까이 쉰 것도 이를 고려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잔향이 부족한 공연장의 음향 환경 탓도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처음부터 이를 감안하고 들었음에도 마지막에 오케스트라와 홀이 제대로 공명(共鳴)했더라면 장엄한 피날레의 감동이 더해졌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날 태풍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진 탓에 객석에 빈자리가 많았던 점도 아쉬웠습니다. 예르비와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앙코르곡까지 최선을 다해 연주했습니다. 음악과 무대에 대한 이들의 열정과 애정이 다시금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앙코르곡은 첫날 연주하지 않았던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 예르비의 직전 내한 공연이었던 2018년 12월 도이치캄퍼필하모닉 연주회에서도 앙코르로 들려준 작품입니다. 역시 현악 앙상블이 빛났습니다. 미세하고 정교한 강약 조절과 완숙하고 밀도 높은 하모니로 생명력 넘치고 풍부한 표정이 살아 있는 ‘슬픈 왈츠’를 들려줬습니다.
예르비도 흡족했나 봅니다. 연주가 끝나고 악장, 첼로 수석 등의 손을 잡으며 고마움을 표하는 데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이렇게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똘똘 뭉친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연주의 감동을 더 했습니다. 부럽기도 했습니다. 국내 오케스트라 연주회장에서도 이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1악장. 현의 반주형 도입부가 시작되자 명연을 예감케 했습니다. 마에스트로의 왼손 움직임에 따라 여리고 유려하면서도 날렵하게 흘렀습니다. 첫날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의 감동이 벌써부터 되살아났습니다. 지난 5일 수원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파보 예르비 &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현장입니다. 3일 서울 예술의전당콘서트홀, 4일 통영국제음악당에 이어 사흘 연속 이어지는 내한 공연의 마지막 무대입니다.
서울·통영 공연과는 달리 2부 메인 곡이 차이콥스키 5번이 아니라 시벨리우스 2번입니다. 원래 인기 있는 레퍼토리이지만 세상에 태어난 지 120주년이 되는 올해 유난히 더 자주 무대에 오르는 작품입니다. 시벨리우스를 즐겨 연주하는 에스토니아 지휘 명장은 이 곡을 어떻게 들려줄지 궁금해 첫날 서울 공연장에 이어 이날 수원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찰떡 호흡’이라고 하나요. 예르비가 2011년 창단한 오케스트라입니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이긴 하지만 에스토니아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패르누 뮤직 페스티벌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예르비와 함께한 단원들입니다. 이 악단에 참여하고 있고, 이날도 무대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은(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은 “다들 마에스트로(파보 예르비)가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좋아서 모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연륜과 관록이 느껴지는 연주자부터 젊은 연주자까지 한눈에 봐도 연령대가 다양합니다. 예르비의 제의를 받고 기꺼이 동참한 단원들이라고 했습니다. 첫날도 그랬지만 이날도 연주하는 모습에서 이들이 얼마나 예르비를 존경하고 신뢰하는지, 예르비가 만들어 가는 음악을 얼마나 좋아하고 즐기는지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지휘자를 둘러싼 현악의 앙상블과 응집력이 빼어납니다. 첫날과 같이 1부와 2부는 에스토니아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시작했습니다. 1부엔 아르보 패르트의 '벤저민 브리튼을 기리는 성가', 2부엔 에르키 스벤 튀르의 '십자가의 그늘에서'를 타악기를 동반한 현악 오케스트라로 들려줬습니다. 음악의 결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서정성을 갖춘 경건한 음악이었습니다. 지휘자의 손짓과 동작에 거의 하나가 돼 움직이는 현악은 다채로운 음색과 변화무쌍한 다이내믹으로 빚어내는 풍성하고 섬세한 음악으로 청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1부에서 이 악단의 단원이기도 한 바이올리니스트 투린 루벨과 첼리스트 마르셀 요하네스 키츠가 솔리스트로 나서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을 들려줬습니다. 솔리스트 간 호흡과 솔리스트들과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이 유난히 돋보이는 연주였습니다. 독주자들이 단원들이어서 그런가요. 이들은 독주자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일원처럼 지휘자의 템포와 동작에 맞춰 연주했습니다. 각자의 개성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기보다 앙상블을 중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같은 곡을 3일 연속 연주해서 그런지 첫날보다는 독주자들의 긴장감과 집중력이 떨어진 듯했습니다. 서로 살짝 어긋나고 흐트러진 대목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호연이라 할 만했습니다. 다시 시벨리우스 2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1부 독주자로 빠졌던 루벨이 악장 옆 자리에 앉고, 키츠가 첼로 파트에 합류하며 오케스트라 진용이 완성됐습니다. 예르비는 확고하게 짜 놓은 시나리오와 설계대로 후기 낭만주의의 풍부한 색채와 작곡가 특유의 북유럽 정서가 담긴 선율이 가득한 작품을 드라마틱하게 이끌었습니다. 역시나 현악이 빼어났습니다. 더블베이스의 진중한 저음을 비롯한 현악기들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적인 앙상블이 목관과 호른 등이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장을 든든하게 깔아줬습니다.
예르비는 폭넓은 완급과 다이내믹 조절로 극적인 표현을 탁월하게 이끌어냈습니다. 중간중간 전체 악기가 쉬는 타이밍도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적절하게 조절했습니다. 차이콥스키 5번이 그랬듯이 시벨리우스 2번도 악장 간 쉼 없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연주했습니다. 1악장이 처음의 반주 음형이 잦아들며 마무리될 무렵 손을 번쩍 들어 팀파니가 바로 울리도록 신호를 보냈습니다. 2악장과 3악장도 잠깐의 사이를 두고 바로 연주했습니다. 베토벤 5번처럼 음악적으로 이어지는 3악장과 4악장의 연결도 극적인 효과를 부각했습니다. 2악장 중간부터 목관 앙상블이 흔들리는 등 관악 파트에서 더러 실수가 나왔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예르비는 끝까지 특유의 절도 있는 동작으로 고양감 넘치는 피날레를 이끌어냈습니다. 다만 장거리를 이동하는 고된 투어 일정 탓인지, 금관이 후반부에 힘에 부친 듯했습니다. 마지막 ‘아멘 종지’에서 ‘아~'에 해당하는 음에 이어 ‘멘~'을 연주하기 전에 이례적으로 거의 한 마디가까이 쉰 것도 이를 고려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잔향이 부족한 공연장의 음향 환경 탓도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처음부터 이를 감안하고 들었음에도 마지막에 오케스트라와 홀이 제대로 공명(共鳴)했더라면 장엄한 피날레의 감동이 더해졌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날 태풍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진 탓에 객석에 빈자리가 많았던 점도 아쉬웠습니다. 예르비와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앙코르곡까지 최선을 다해 연주했습니다. 음악과 무대에 대한 이들의 열정과 애정이 다시금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앙코르곡은 첫날 연주하지 않았던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 예르비의 직전 내한 공연이었던 2018년 12월 도이치캄퍼필하모닉 연주회에서도 앙코르로 들려준 작품입니다. 역시 현악 앙상블이 빛났습니다. 미세하고 정교한 강약 조절과 완숙하고 밀도 높은 하모니로 생명력 넘치고 풍부한 표정이 살아 있는 ‘슬픈 왈츠’를 들려줬습니다.
예르비도 흡족했나 봅니다. 연주가 끝나고 악장, 첼로 수석 등의 손을 잡으며 고마움을 표하는 데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이렇게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똘똘 뭉친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연주의 감동을 더 했습니다. 부럽기도 했습니다. 국내 오케스트라 연주회장에서도 이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