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뿐 아니라 산업과 정부도 통폐합 및 세분화 과정을 반복한다. 신정부가 지방 정부 교체에 맞춰 공공기관 효율화를 위해 산하 기관의 기능을 조정·재편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대구경북디자인진흥원과 부산디자인진흥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효율화 우선 정책으로 지역의 특색을 살리며 발전할 성장 동력이 약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디자인은 국민의 행복한 삶에 깊이 관여해 있다.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편리한 기능뿐 아니라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과 각 지역의 디자인진흥원이 이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 대만, 중국 등은 한국 정부 주도의 디자인 정책을 배웠다. 디자인 선진국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은 각 지역 특성을 잘 살린 로컬디자인의 대표적인 국가다. 우리나라는 지역 특색의 색채를 발전시키고자 15년 전부터 광주, 부산, 대구, 대전, 춘천 등에 지역디자인센터를 구축했다.
국격 높일 'K디자인의 시대'
도시가 인간 친화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중심으로 설계하고 디자인해야 한다. 수원화성은 수원 사람들의 커다란 자랑거리다. 조선의 정조대왕은 적의 침공을 막아내는 용도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 힘’이라는 신조로 자연 지형과 어우러지도록 축조했다. 미적인 데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다산 정약용이 거중기를 고안하도록 해 기술 혁신을 이루도록 했다.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의 튼튼함에만 신경 썼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까? 아름다움의 가치를 아는 디자인 리더 정조대왕을 21세기에 소환하는 상상을 해본다. 성장 속도와 효율성만을 추구하던 20세기는 지나갔다. 봉준호 감독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국가 디자인 총괄 '디자인청' 신설을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가 넘는 21세기 대한민국은 질과 감성을 추구하는 창의성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K컬처와 K콘텐츠의 이면에는 수많은 디자인 인력의 땀과 노력이 녹아 있다. K컬처에 이어 K디자인을 세계가 주목할 것이다. 서울은 이미 첨단 디자인 도시다. K디자인 한국에 세계가 놀라워할 것이다.지역의 공공기관 통폐합이 효율화의 최선은 아니다. 디자인진흥원 역사 50년 만에 제대로 구축된 지역 디자인 체제를 행정 효율화를 앞세워 통폐합한다는 것은 시대를 거스르는 일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과 각 지역 디자인진흥원은 창의성을 뿜어내는 곳이다. 오히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국디자인진흥원, 문화부 산하의 공예·디자인 문화진흥원, 콘텐츠진흥원, 중소벤처기업부에 있는 테크노파크 등 여러 정부 기관에 흩어져 있는 디자인 연관 기관을 총괄하는 곳이 필요하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 국격을 높일 수 있는 강력한 디자인청(가칭)을 신설해 주기를 바란다. 33만 명 디자인 종사자의 염원이다.
윤주현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