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석 폴란드한인연합회 회장(왼쪽 첫 번째)이 우크라이나 탈출에 성공한 고려인 난민들과 촬영하고 있다.
남종석 폴란드한인연합회 회장(왼쪽 첫 번째)이 우크라이나 탈출에 성공한 고려인 난민들과 촬영하고 있다.
“돈만 벌기 위해 사업하기보다 이제는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사업으로 제2의 창업을 한다는 각오입니다.”

30대 초반 선경(현 SK네트웍스)의 해외 지사장으로 폴란드에 파견됐다가 2003년 섬유업체 칸을 설립해 현지 1위 회사로 일군 남종석 폴란드한인연합회장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칭기즈칸에서 딴 회사 이름처럼 기동력을 무기 삼아 무일푼에서 시작해 사업을 확장한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생과 사업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했다.

남 회장은 폭격을 피해 폴란드 국경지대로 탈출한 한 한국계 우크라이나인(고려인)을 도운 것을 계기로 6개월간 총 500여 명에게 긴급 숙소를 제공하고 1000여 명에게 식사와 생필품을 지원하는 일을 주도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섬유산업이 침체에 빠져 낙심했지만, 생존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에 비하면 엄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 최선을 다하다 보니 이젠 사업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 한 달간은 거의 잠을 못 자 입술이 부르튼 채 지냈다고 했다. 한 피란민을 돕기 위해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공유한 뒤로 “아이와 함께 탈출했는데 머물 곳이 없다” “차비가 없다” “먹을 음식이 좀 있느냐” 등 한 달 만에 200명이 넘는 피란민이 그에게 절박한 구호신호(SOS)를 보냈기 때문이다.

SOS를 받은 뒤론 24시간 집과 차에서 대기하며 모든 폴란드 인맥을 동원해 숙소를 잡아줬다. 5000여 명의 폴란드한인회도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이들을 가족처럼 품었다. 남 회장은 “피란민 가운데 우크라이나 징집령으로 현지에 남편을 두고 온 부인과 어린 자녀, 노인들이 많아 도움이 절실했다”며 “러시아인 친척을 둔 난민이 많아 가족 간에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비극도 적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국기아대책과 함께 임시보호소를 마련했고 현지 한국음식점의 도움으로 ‘바우처’도 제공했다. 그의 사업(섬유·무역)에서 착안해 기금 마련 티셔츠도 만들어 3000장 넘게 판매했다. 폴란드에 진출한 LG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 희성전자, 현대엔지니어링 등 한국 기업을 비롯해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 옥타), 고려대교우회, 유럽한인회 등이 티셔츠를 단체 구매해 힘을 보탰다.

그가 경영하는 폴란드 최대 섬유회사 칸의 경영 상황은 녹록지 않다. 경기 침체로 섬유 수요가 줄고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상승으로 매출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올해 매출도 연평균 매출인 2000만달러(약 270억원)에 못 미칠 전망이다. 하지만 그는 섬유사업에서 종합무역업, 식품, 화장품, 마이스(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로 업종을 다변화해 새롭게 도전하기로 했다. 한국의 화장품과 음식, 문화 등을 폴란드를 통해 동유럽에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남 회장은 “러시아와 독일 등 강대국에 둘러싸인 폴란드는 지정학적 위치가 한국과 비슷한 데다 한류 열풍도 상당해 사업 기회는 무궁무진하다”며 “앞으로 한국과 폴란드의 경제 교류에 크게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