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한 운동을 한 뒤 몸에 쌓이는 젖산은 몸 속 노폐물로 알려졌다. 폐암 환자의 암세포가 젖산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최근 이런 과거 연구와 상반된 결과가 발표됐다. 젖산이 종양미세환경을 바꿔 암을 공격하는 면역을 높인다는 것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미 택사스대의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 연구팀은 지난 6일 네이처커뮤니케이션즈에 이런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동물실험을 통해 젖산이 면역세포인 CD8+T세포 기능을 높이고 이를 통해 암과 싸우는 면역 기능을 강화한다고 했다. 고강도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젖산이 암과 싸우는 면역세포에게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rejuvenate)는 의미다.
운동 후 생긴 젖산은 노폐물? 젖산, CD8+T세포 늘려 항암효과 높인다
연구팀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종양이 생긴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젖산 용액을, 한 그룹에는 포도당 용액을 투여했다. 종양 세포는 결장암 모델로 알려진 MC38을 활용했다.

실험 시작 8일 차부터 매일 두 용액을 각각 피하 주사했더니 젖산을 투여한 쥐에게선 암 세포가 더디게 커졌다. 포도당을 투여한 그룹은 아무것도 투여하지 않은 그룹과 암 성장 속도가 비슷했다. 젖산이 암 진행을 늦추는 데 효과를 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젖산이 종양미세환경(TME)을 어떻게 바꾸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요 면역세포 변화를 관찰했다. 면역세포인 B세포와 T세포 림프구가 없는 동물모델(Rag1 녹아웃)은 젖산 용액을 투여해도 암 세포가 계속 자랐다. 젖산 용액이 면역세포에 영향을 줘 암 성장을 늦췄다는 의미다.

이후 CD8+T세포, CD4+T세포, 대식세포 등 TME를 결정하는 세가지 면역 세포를 대상으로 젖산의 효과를 확인했다. 그 결과 다른 세포와 달리 CD8+T세포는 젖산 투여에 따라 항암 효과가 달라졌다. 젖산이 CD8+T세포에 영향을 줘 암과 싸우는 면역력을 높인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연구팀은 젖산 만으로는 항암 효과가 완전하지 않다고 판단해 다른 항암제와 젖산을 함께 투여하는 연구도 진행했다. 대조군인 포도당과 면역관문억제제로 알려진 PD-1억제제, T세포에 영향을 주는 나노백신(PC7A)을 각각 젖산과 함께 투여했다.

그 결과 젖산은 PD-1억제제와 나노백신의 효과를 높였다. PD-1억제제와 젖산을 함께 투여한 동물모델의 절반정도는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 결장암(MC38) 뿐 아니라 흑색종 동물모델(B16F10)에서도 젖산은 다른 항암제 효과를 높였다.

젖산은 외상이나 수술 등으로 인한 출혈 후 체액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된다. 대사성 산증을 치료할 때 정맥 투여하기도 한다. 연구 책임자인 진밍가오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메디컬센터 교수는 "그동안 노폐물로 여겨온 젖산이 우리도 모르는 새 암과 싸우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가오 교수는 젖산이 면역관문억제제나 암백신, 키메릭항원수용체(CAR)-T세포 치료제 효과를 높이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팀은 몸 속 젖산 수치를 자연적으로 높여주는 운동이 항암 효과를 내는지에 대해서도 추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