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을 이용한 국가주의와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이 부상하고 있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가기 위해선 민주주의 원칙을 수호해야 한다.”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사진)는 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2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성과공유 컨퍼런스’에서 “많은 포퓰리스트 리더들이 SNS 플랫폼을 사용해 국가를 양극화시키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국가 성패를 결정짓는 것은 제도”라는 점을 규명한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경제학자다. 사유재산권 보호, 공정한 경쟁 확보, 기술과 보건 등 국민 후생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이뤄지는 ‘포용적’ 민주제도와 시장경제가 구축됐는지 여부가 국가의 흥망을 좌우했다는 게 그의 이론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인생책’으로 꼽은 세 권 중 하나다. 현 정부의 정책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현재를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민주주의가 맞이하는 가장 큰 전환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기후변화, 불평등, 고령화, 세계화 종식, 새로운 경제질서, 기술혁명 등 시대적 변화가 겹치면서 민주주의도 상당한 도전을 받고 있다”며 “신기술과 세계화가 낳은 불평등 심화와 팬데믹, 인플레이션이 노출시킨 기존 경제체제의 취약한 틈 사이로 국가주의와 포퓰리즘이 세를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국가주의와 포퓰리즘이 결코 번영의 ‘답’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국부를 소수 세력이 독점하는 게 아니라 기술 발전과 보건 등 국민 후생을 높이는 데 투입해 번영을 이끌었다”며 “지나친 권력 집중은 이 같은 포용적 경제가 아니라 착취적 경제로 사회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되는 인구구조를 보면 세계 경제학자 누구든 ‘끔찍하다’고 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디지털 기술력과 세계 교역 시스템을 영리하게 활용해 문제를 잘 극복해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불평등 심화가 낳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기술혁신의 틀 자체를 바꿀 것을 주문했다. 그는 “(고용을 대체하는) 자동화에 치우친 기술혁신이 아니라 인구구조 변화에 맞춰 많은 이가 포용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해야 한다”며 “정치적 분열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신뢰관계 형성도 한국 사회의 숙제”라고 말했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신냉전 시대에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커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양극(미국·중국)에 치우친 국제 권력을 최소 네 개 이상으로 분산시켜 균형을 이뤄야 정치·경제적 안정이 이뤄질 수 있다”며 “자유민주주의 기반의 성장 경험을 지닌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