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문장] "여러 명의 의지가 하나의 죽음을 이끌어 낸다"
아버지를 도와 고물상에서 일하는 ‘해미’는 어느 날 유품 정리를 의뢰받는다. 의뢰인은 20대 초반의 남성. 해미는 의뢰인이 말한 주소지를 방문해 견적을 뽑고, 약속한 날 특수 청소 장비를 챙겨 다시 방문한다. 그런데 비어 있어야 할 그곳에 누군가가 있다. 집 안에 있는 사람은 바로 의뢰인. 그는 의아해하는 해미에게 이렇게 말한다. “죄송해요. 실패했어요.”

누군가 삶보다 죽음을 해답이라 믿었다면 세상이 그에게 떠넘긴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 것이 고물상의 질서. 그러나 해미는 의뢰인이 말한 ‘실패’의 의미를 깨닫고는 쉽사리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다. ‘여러 명의 의지가 하나의 죽음을 이끌어 낸다. 누군가의 의지와 누군가의 동의와 누군가의 묵인.’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들에 관한 뉴스를 볼 때마다 나는 자꾸 이 문장 앞으로 돌아온다. 누군가 홀로 대면해야 했을 삶의 무게와 고독. 어떤 선택의 책임은 모두에게 남겨진다.

소설가 허남훈(2021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