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에 어깃장을 놓자 7일(현지시간) 밀 가격이 상승 마감했다. 우크라이나산 밀의 수출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됐다.

이날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선물 12월물은 전 장보다 3.3% 오른 부셸당 8.442달러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는 7월 11일 이후 두달 만에 최고치다. 이날 장중 밀 선물 가격은 전 장보다 7% 가까이 오르기도 했다.
<9월 7일 밀 선물 가격 흐름>
자료: 블룸버그
<9월 7일 밀 선물 가격 흐름> 자료: 블룸버그
이날 밀 선물 가격 상승은 푸틴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다. 같은 날 푸틴 대통령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제7차 동방경제포럼 본회의 연설에서 흑해를 통해 수출되는 우크라이나 곡물의 향방을 문제삼고 나섰다. 그는 “우크라이나 곡물 대부분이 도움이 필요한 아프리카 국가가 아닌 유럽연합(EU)을 향하고 있다”며 “인도적 재앙을 촉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우크라이나 곡물을 싣고 출항한 선박 87척 가운데 단 2척만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라로 향했을 뿐”이라며 “이들이 수령한 곡물은 전체 반출량인 200만톤(t) 가운데 3%에 불과한 6만t”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수입할 수 있는 나라를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논의하겠다고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가난한 나라들이 ‘속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급등했던 곡물 가격은 지난 7월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이 재개되면서 진정 추세로 돌아섰다.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7월 22일 흑해를 통한 식량자원 수출 재개에 합의해서다. 합의 이후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흑해를 통해 세계 여러 국가로 수출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누적 수출량은 200만t을 넘겼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합의를 깰 경우 다시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수출길이 제한된다. 앞서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이 합의가 연장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합의는 4개월 동안 지속되며 11월에는 종료된다.

푸틴 대통령의 주장을 두고 우크라이나는 반발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수출되는 우크라이나 곡물 중 3분의 2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을 향한다”고 반박했다.

푸틴 대통령의 속내는 우크라이나의 자금줄을 끊는 데 있다는 분석이다. 앨런 수더먼 스톤X 원자재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는 곡물 수출을 통해 얻은 자금으로 국방력을 강화할 수 있다”며 “이는 푸틴 대통령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천연가스를 무기화한데 이어 곡물 수출까지 가로막으며 서방을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