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자동차 등 일본 기업들이 제조강국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적 생산방식인 ‘적기 생산(Just In Time·재고 최소화)’을 포기하고 있다. 일부 인기 차종의 납기가 4년을 넘어서는 등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일본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도요타자동차는 최근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랜드크루저의 판매를 중단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지금 주문해도 4년 뒤에야 차량을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의 고급차 브랜드인 렉서스의 LX와 NX, 닛산의 전기차 아리아, 혼다의 SUV 베젤도 일시적으로 판매를 중단했다. 모두 차량 인도 기간이 1년을 넘어선 인기 차종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에서 차가 없어서 못 파는 현상이 벌어진 것은 자동차 부품 부족 때문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은 보도했다. 중국의 도시 봉쇄로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부품 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일본 완성차업체는 전체 부품의 39.4%인 3227억엔(약 3조1362억원)어치의 부품을 중국에서 조달했다.

지금까지 일본 제조업체들은 최대한 재고를 쌓지 않는 생산방식으로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재고자산회전기간(재고자산/월평균 매출)’은 1990년대 1.2개월에서 2000년대 들어 1개월 이하로 떨어졌다. 재고를 한 달 매출보다 적게 확보했다는 뜻이다. 2019년 말 자동차업종의 회전기간은 0.57개월로 줄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공급망이 단절되자 재고를 최소화하는 일본의 생산방식은 한계를 드러냈다. 적기생산을 처음 도입한 도요타마저 재고를 적극 늘리기 시작했다.

올 3월 말 도요타의 재고자산은 3조8000억엔으로 1년 새 32% 늘었다. 제조업 전체 재고도 2020년 1분기보다 31% 증가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