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압때문에 문 밀고 나가지 못해
부처간 방화문 지침도 달라 문제
국토부 방화규칙, 문 밀도록 설계
행안부 침수지침은 반대로 당겨야
"폭우땐 지하실 문 열고 고정해야"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는 13일 “지하주차장 침수 희생자 중 다섯 명이 방화문 근처에서 발견됐다”며 “외부 수압으로 비상문을 열지 못해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이 아파트 평면도를 보면 지하주차장엔 세 개의 비상구가 있다. 모두 지하 1층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방화문이 설치된 곳으로 사망자 대부분은 물이 불어나자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이곳으로 몰렸다. 하지만 지하주차장으로 순식간에 물이 유입됐고 방화문 밖 역시 일부가 잠겼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통로가 좁아서 물이 더 빠르게 차올랐다”고 설명했다. 희생자들이 문을 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외부 수압 탓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방화문은 건물 화재가 확산하는 것을 막아준다. 특히 지하에선 화재가 발생하면 계단으로 유출되는 연기를 차단하고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준다. 11층 이상 아파트는 모든 층에 방화문을 설치해야 한다.
문제는 국토교통부 건축물 방화규칙에 따라 방화문이 안에서 밖으로 밀어야 열리도록 설계돼 있다 보니 침수에는 취약하다는 점이다. 문 외부가 일부만 물에 잠겨도 웬만한 성인은 힘으로 열기가 어렵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2014년 침수 상황을 가정하고 성인 남녀 다섯 명을 상대로 실험한 결과 30㎝(정강이 높이) 이상 차오르면 일부 성인이 출입문을 열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입문 밖으로 물이 50㎝(무릎 높이)까지 차올랐을 때는 실험에 참가한 성인 다섯 명 중 아무도 문을 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침수에는 취약한 방화문 개폐 방향을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정부의 방화문 지침과 침수를 관리하는 침수 방지 매뉴얼이 상반된다. 국토부 건축물 방화규칙은 안에서 밖으로 밀도록 규정한다. 안에서 밖으로 미는 방식이 화재 상황에서 대피하는 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행정안전부가 정한 침수 방지 매뉴얼은 안에서 당기도록 돼 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이론적으로는 안과 밖으로 모두 열 수 있는 방향으로 지침을 바꾸는 게 맞겠지만 이는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렵다”며 “침수가 예상되는 상황에선 방화문을 열어두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희생자 유가족을 중심으로 방화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지하에 주차된 차를 빼러 갔다가 중학생 아들을 잃은 김모씨(51)는 “밖으로 나가는 비상구가 세 곳이나 있었는데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며 “문만 열 수 있었다면 이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