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리더의 시각
KB증권 WM투자전략부 이창민 연구위원

[마켓PRO] 모든 자산이 녹아내리는 시장, 킹 (king)이 된 현금

9월도 투자자들에게는 인고(忍苦)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5월 물가 정점 기대, 7월 연준의 피벗 (통화긴축기조 완화) 기대, 6월 금리 고점 기대라는 3가지 심리적 안전장치가 고장났다. 미 연준 (Fed)의 강한 긴축 의지, 에너지 위기, 강 달러라는 세 가지 키워드는 ‘Cash is King’으로 연결된다. 더 나은 투자 환경을 기다리면서 보유 자산의 위험성을 낮추고 현금 비중을 확대할 시기다.

‘킹받네’라는 말,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MZ세대들의 오래된 이 신조어는 ‘열받네’의 강화 버전이다. 필자도 그렇지만 요즘 금융시장을 보고 있으면 모든 투자자들이 킹받을 것이다. 일단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경계가 무너진 느낌이다. 주식시장이 힘들면 안전한 채권시장이 강세이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고점을 경신할 태세다 (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비례한다).

외환시장은 난리도 아니다. 강 달러가 아니라 킹 (King) 달러 세상이 도래했다. 경험적으로 강한 달러는 글로벌 증시에 슬픈 추억을 많이 가져다 주었는데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물가는 정점을 찍었지만, 과거 추이보다 높은 물가가 오래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에서 주택 임대 (Rent)와 식품 (Food & Beverage) 두 품목이 거의 절반의 비중을 차지한다.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모기지 대출에 대한 부담이 증대되면서 최근 주택 구매를 포기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연준이 의도한 바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살 (live) 집은 필요하다. 그 결과, 금리 인상이 집값 안정에는 도움을 주고 있지만, 주거 임대 부담은 여전히 높다.
[마켓PRO] 모든 자산이 녹아내리는 시장, 킹 (king)이 된 현금
식품 물가도 마찬가지다. 원재료 가격은 하락했을 수 있지만 공산품 가격은 높아졌고, 특히 높아진 팁까지 생각하면 외식 부담이 크다. 9월 6일 기준 S&P500지수는 연초 이후 18% 가량 하락했는데, 팁 부담이 없고, 가격이 저렴한 맥도널드, 치폴레 같은 패스트푸드 기업의 주가는 5~6% 수준의 하락에 그치고 있다. 체감하는 소비 부담을 수익률의 차이가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심각한데, 수십년 만에 달러 대비 최저수준으로 하락한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유럽은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장기간 진행하면서 에너지 자립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유무역주의 기조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미중 무역분쟁과 코로나 이후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었고, 전쟁까지 겹치면서 러시아로 하여금 천연가스를 무기화할 수 있는 빌미를 초래했다.

러시아는 독일로 향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노드스트림1)을 여러 차례 잠그면서 유럽을 위협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경제가 몸살 난 유럽 국가들은 높은 인플레이션때문에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해서 스태그플레이션 (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 우려는 더욱 커졌고, 이미 경기 침체에 진입했다는 일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에너지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은 가스와 전기를 품앗이하기로 했고, 영국과 독일은 국민들에게 보조금 지급 정책까지 마련했다. 신흥국도 아닌 선진국이 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걸 감히 상상이나 했던 적이 있었을까?

달러 강세는 크게 보면 국가간 긴축 강도와 경제 체력의 상이함에서 발생하고 있다. 향후에 이 논리가 더 강화될 것이고, 안전자산 선호 측면에서도 달러의 수요는 증대될 것이라는 점에서 수요와 공급 법칙 상 달러 가치가 빠르게 하락할 가능성은 낮다. 8월 잭슨홀 회의에서 파월 의장은 지난해보다 5페이지 짧은 연설문을 통해 간결하고 강렬하게 긴축 메시지를 전달했다. 경기보다 물가 안정에 우선하겠다는 연준의 진심이 시장에 전달되었고, 이를 통해 시장과의 미스커뮤니케이션을 해소했다.

다행이지만 아쉬운 부분은, 연준이 초래한 시장의 오해로 인해 6~7월간 150bp라는 무지막지한 금리인상의 효과가 시장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고, 이제 또 다른 빅스텝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행 총재는 연준보다 선제적으로 긴축을 종료하는 건 어렵다고 했다. 다른 나라들도 강화된 연준의 긴축 스탠스에 대응하려면 반 강제적으로 긴축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잘 버틸 수 있겠지만, 유럽 등 경제 체력이 약해진 곳은 생채기가 더디게 아물거나 오히려 짓무를 수 있다. 미국의 통화정책 실기에 대한 책임이 주변 국가로 이전되는 격이다.

9월 연준의 금리인상 폭이 75bp일지, 아니면 100bp일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최근 금융시장의 모습처럼 투자자들은 좀 더 먼 미래를 시장 가격에 반영하려고 할 것이다. 즉, 연준의 긴축 기조가 유지되는 것은 기정 사실이 되었고,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인상될 기준금리가 향후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에 대한 우려가 주식과 채권 가격에 나타날 것이다. 아쉽게도 가격은 위의 방향보다는 아래의 방향일 가능성이 크다. 국내 자산에 치우친 투자자에게 글로벌 자산배분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고 감히 말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