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개종하면 세금면제"…한 손엔 칼, 다른 손엔 코란과 免稅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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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의 종횡무진 경제사
(11) 이슬람 초기 '포교의 정석'
정복지엔 3가지 옵션 '세금·이슬람·죽음'
세금 내면 개종 안해도 된다는 포용 접근
시민안전 보장 못하면 걷은 세금 돌려줘
마구잡이 증세 없애고 '납세자 존중' 인기
(11) 이슬람 초기 '포교의 정석'
정복지엔 3가지 옵션 '세금·이슬람·죽음'
세금 내면 개종 안해도 된다는 포용 접근
시민안전 보장 못하면 걷은 세금 돌려줘
마구잡이 증세 없애고 '납세자 존중' 인기
그리스도교는 일요일에 예배를 본다. 유대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삼는다. 이슬람의 대예배일은 금요일이다. 그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뭘 할까. 서로 싸운다. 내내 싸워왔고 앞으로도 싸울 것이다. 사랑과 용서와 자비를 말하지만 그게 지켜지는 일은 별로 없다. 자기들이 죽여 놓고 신의 승리라고 말한다. 종교 때문에 싸우는 건지 싸우기 위해 종교를 개발한 건지 모르겠다. 셋 중 가장 최신 종교가 이슬람이다.
무함마드가 마흔이 되던 610년 첫 번째 계시가 들려온다. 산에서 돌아온 무함마드는 내가 미쳤나 보오, 아내에게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열다섯 연상 아내는 오히려 기뻐하며 무함마드가 민족의 예언자가 될 것이라 치켜세운다. 그러나 포교 성적은 형편없었다. 1년 동안 무함마드의 말에 넘어간 사람은 가족, 친구, 친척 그리고 집에서 부리던 하인까지 70여 명이 전부였다. 보험판매업은 가족과 친척들에게 팔고 난 뒤부터가 진짜 실력이다. 포교도 마찬가지. 70여 명은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얼굴을 봐서 그냥 믿어주기로 했을 뿐이다. 가족이니까, 친구니까, 친척이니까(심지어 숙부도 무함마드가 하는 말을 믿지는 않았다).
일단 무함마드의 설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맞지 않았다. 약탈과 보복 전쟁이 일상인 사막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던 아랍인들은 과음(過飮)과 과음(過淫)으로 불안을 잊었다. 그런데 도덕적이고 순종하는 삶이라니요. 게다가 무함마드가 하는 이야기들은 별로 신선하지 않았다. 아라비아반도의 남서쪽(지금의 예멘 지역)에 ‘힘야르’라는 왕국이 있었다. 기원전 110년부터 기원후 525년까지 존속했는데 이 왕국이 유대교를 믿는 왕국이었다. 왕국 바로 위가 무함마드가 살던 메카이니 이들도 유대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무함마드가 하는 이야기들은 유대교와 자주 겹쳤다. 지지자는 없었지만 적대자는 많았다. 메카에는 수백 개나 되는 신을 모시는 대신전이 있었고 자기가 믿는 신을 알현하러 오는 방문객들은 메카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해서 무함마드의 유일신 사상은 종교적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위험했다. 메카의 귀족들은 무함마드를 신의 품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한다. 622년 무함마드는 70여 명의 지지자와 함께 북쪽으로 도주했고 그로부터 8년 후 메카를 정복한 뒤 사망한다. 이후 이슬람의 팽창 속도는 경이적이다. 636년에는 페르시아를 무너뜨렸고 637년에는 예루살렘을 접수했으며 641년에는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까지 쳐들어갔다. 711년에는 이베리아반도까지 점령해 불과 200년 만에 알렉산드로스, 로마에 이어 세 번째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세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슬람의 초기 성공 비결은 세금이었다. 무함마드의 뒤를 이은 아부 바크르는 자신들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했다. 페르시아를 점령했을 때 이슬람 군대는 현지인들에게 셋 중 하나를 고르도록 했다. 세금, 이슬람 그리고 죽음이다. 개종하지 않더라도 세금을 내면 상관없었고 세금 낼 돈이 없으면 종교를 바꾸면 그만이었다. 둘 다 싫어 죽음을 선택하는 기개 넘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복지에서의 감세나 면세는 이들의 익숙한 교리만큼이나 식상한 전략이다. 이슬람은 단순한 세금 면제가 아니라 훨씬 더 감성적으로 접근했다. 그것은 납세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번영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다. 정복지에서 이슬람은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배려하고 도왔다. 경작지의 사정을 무시하고 세금만 챙기는 행위를 극도로 꺼렸고 경작자의 토질 개선을 돕는 것을 정책으로 삼았다.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했을 때 이슬람은 자신의 재물을 대하듯 농민들을 아꼈다. 가뭄이나 전염병으로 생산량이 줄면 세금을 낮출 수 있도록 관리들에게 재량권을 줬고 세수 감소를 이유로 타박하지도 않았다. 풍년이 들면 그 몇 배로 돌아온다는 장기적인 구상이었다. 세금을 돌려준 전무후무한 사례도 있다. 안티오크에서 로마군에 밀려 후퇴할 때 이슬람은 정복 지역에서 거둔 세금을 돌려줬는데 세금은 보호의 대가이고 이제는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만큼 반환하는 것이 옳다는 이유였다. 그 지역 기독교인들이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말라고 이교도인 이슬람 군대에 눈물로 호소했다고 하니 참 볼 만한 풍경이었겠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초심을 잃었고 개종자에게 세금을 걷기 시작했다. 뻗어나가던 문명이 쪼그라드는 빤한 패턴이기는 하지만 납세자를 절대로 모욕하지 않았던 초반의 정책까지 빛을 잃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재정을 담당하는 분들은 이슬람의 사례를 머리에 새겨야 한다. 세금 징수를 권리로 착각하지 말라. 납세자를 존중하지 않은 순간 납세자도 댁들의 권위를 땅바닥에 처박아 버릴 것이다.
남정욱 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무함마드가 마흔이 되던 610년 첫 번째 계시가 들려온다. 산에서 돌아온 무함마드는 내가 미쳤나 보오, 아내에게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열다섯 연상 아내는 오히려 기뻐하며 무함마드가 민족의 예언자가 될 것이라 치켜세운다. 그러나 포교 성적은 형편없었다. 1년 동안 무함마드의 말에 넘어간 사람은 가족, 친구, 친척 그리고 집에서 부리던 하인까지 70여 명이 전부였다. 보험판매업은 가족과 친척들에게 팔고 난 뒤부터가 진짜 실력이다. 포교도 마찬가지. 70여 명은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얼굴을 봐서 그냥 믿어주기로 했을 뿐이다. 가족이니까, 친구니까, 친척이니까(심지어 숙부도 무함마드가 하는 말을 믿지는 않았다).
일단 무함마드의 설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맞지 않았다. 약탈과 보복 전쟁이 일상인 사막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던 아랍인들은 과음(過飮)과 과음(過淫)으로 불안을 잊었다. 그런데 도덕적이고 순종하는 삶이라니요. 게다가 무함마드가 하는 이야기들은 별로 신선하지 않았다. 아라비아반도의 남서쪽(지금의 예멘 지역)에 ‘힘야르’라는 왕국이 있었다. 기원전 110년부터 기원후 525년까지 존속했는데 이 왕국이 유대교를 믿는 왕국이었다. 왕국 바로 위가 무함마드가 살던 메카이니 이들도 유대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무함마드가 하는 이야기들은 유대교와 자주 겹쳤다. 지지자는 없었지만 적대자는 많았다. 메카에는 수백 개나 되는 신을 모시는 대신전이 있었고 자기가 믿는 신을 알현하러 오는 방문객들은 메카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해서 무함마드의 유일신 사상은 종교적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위험했다. 메카의 귀족들은 무함마드를 신의 품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한다. 622년 무함마드는 70여 명의 지지자와 함께 북쪽으로 도주했고 그로부터 8년 후 메카를 정복한 뒤 사망한다. 이후 이슬람의 팽창 속도는 경이적이다. 636년에는 페르시아를 무너뜨렸고 637년에는 예루살렘을 접수했으며 641년에는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까지 쳐들어갔다. 711년에는 이베리아반도까지 점령해 불과 200년 만에 알렉산드로스, 로마에 이어 세 번째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세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슬람의 초기 성공 비결은 세금이었다. 무함마드의 뒤를 이은 아부 바크르는 자신들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했다. 페르시아를 점령했을 때 이슬람 군대는 현지인들에게 셋 중 하나를 고르도록 했다. 세금, 이슬람 그리고 죽음이다. 개종하지 않더라도 세금을 내면 상관없었고 세금 낼 돈이 없으면 종교를 바꾸면 그만이었다. 둘 다 싫어 죽음을 선택하는 기개 넘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복지에서의 감세나 면세는 이들의 익숙한 교리만큼이나 식상한 전략이다. 이슬람은 단순한 세금 면제가 아니라 훨씬 더 감성적으로 접근했다. 그것은 납세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번영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다. 정복지에서 이슬람은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배려하고 도왔다. 경작지의 사정을 무시하고 세금만 챙기는 행위를 극도로 꺼렸고 경작자의 토질 개선을 돕는 것을 정책으로 삼았다.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했을 때 이슬람은 자신의 재물을 대하듯 농민들을 아꼈다. 가뭄이나 전염병으로 생산량이 줄면 세금을 낮출 수 있도록 관리들에게 재량권을 줬고 세수 감소를 이유로 타박하지도 않았다. 풍년이 들면 그 몇 배로 돌아온다는 장기적인 구상이었다. 세금을 돌려준 전무후무한 사례도 있다. 안티오크에서 로마군에 밀려 후퇴할 때 이슬람은 정복 지역에서 거둔 세금을 돌려줬는데 세금은 보호의 대가이고 이제는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만큼 반환하는 것이 옳다는 이유였다. 그 지역 기독교인들이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말라고 이교도인 이슬람 군대에 눈물로 호소했다고 하니 참 볼 만한 풍경이었겠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초심을 잃었고 개종자에게 세금을 걷기 시작했다. 뻗어나가던 문명이 쪼그라드는 빤한 패턴이기는 하지만 납세자를 절대로 모욕하지 않았던 초반의 정책까지 빛을 잃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재정을 담당하는 분들은 이슬람의 사례를 머리에 새겨야 한다. 세금 징수를 권리로 착각하지 말라. 납세자를 존중하지 않은 순간 납세자도 댁들의 권위를 땅바닥에 처박아 버릴 것이다.
남정욱 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