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법치' 닮아가는 정치권
최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상대 당보다 재판부와 검찰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14일 심리가 진행된 이준석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인용하면 국민의힘은 다시 한번 지도부가 해체되는 위기를 맞는다. 민주당 역시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각종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 방향에 따라 이 대표 개인은 물론 당의 명운이 달라질 수 있는 처지다.

이런 상황에 대한 양당의 대처도 닮았다. 법원과 검찰의 판단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몰아가며 압박한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법원이) 사법자제의 선을 넘으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발생할 것”이라며 당의 기존 결정과 배치되는 판결을 내리지 말라고 요구했다. 민주당 정치인들도 앞다퉈 “윤석열 검찰의 표적 수사” “작위적 정치쇼”라는 언사를 동원해 비판하고 있다.

사법부는 정당이 내린 판단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제1야당 대표에 대해선 검찰 수사를 가능한 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법의 규율 내에서 일상 활동을 영위하는 국민과 크게 동떨어진 인식 수준이다.

일반 국민에게 법치에 따를 것을 요구하면서 정당 및 정당 대표는 예외로 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법원이 공산당 정법위원회의 통제를 받는 만큼 당 활동 및 결정에 대한 판결권은 사실상 없다. 주요 정치인의 비위 조사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거쳐 이뤄진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내건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의 하나로 법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민간 기업과 국민에게 선택적으로 적용할 뿐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정치 행위에 법원과 검찰이 과도하게 개입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준석 전 대표가 가처분신청을 하고, 이재명 대표가 허위 사실로 판단될 만한 주장을 선거에서 한 순간 정치 영역을 떠나 법치의 영역에 접어든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에서 법치의 역사는 국왕의 전횡을 법적 범위 내로 제한한 1215년 영국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제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정치권은 당장의 유불리를 취하기 위해 법치의 가치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