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바이오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책이 윤곽을 드러냈다. 의약품, 바이오에너지와 농업 등 바이오 산업 전반을 지원하기 위해 20억달러(약 2조8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16일 증권가 등에 따르면 이번 정책이 한국의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에 미칠 영향은 단기적으로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14일(현지시간)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에 관한 회의를 열고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12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에 대해 부처 및 분야별로 정책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앞서 행정명령 서명을 발표하며 백악관은 “미국에서 발명된 것이 더 많이 미국에서 만들어지도록 미국 내 바이오 제조능력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미국에 공장이 없는 국내 CDMO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미국이 전기차나 반도체 산업에서 자국 생산을 유도하는 방식이 바이오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미국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에서 조립한 전기차에만 보조금 혜택을 주기로 했다.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 및 부품도 일정 비율 북미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해야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반도체지원법(Chips for America Act)’에도 서명했다. 미국에 반도체 시설을 지으면 투자액의 25%, 업체당 최대 30억달러(약 4조2000억원)를 세액공제 받는 법안이다.

“韓 단기 영향은 제한적…장기 전략은 고민해야”

예산 규모가 포함된 바이오 지원 계획이 발표된 후 증권가는 국내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바이오의약품과 관련한 바이오 투자 내역은 미국 보건복지부(HSS)가 발표했다. 4000만달러(약 560억원)를 투자해 필수의약품과 항생제, 감염병 대유행(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한 원료의약품 등의 생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 국방부와 함께 5년에 걸쳐 미국 내 바이오 제조 설비(인프라)에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전문인력 육성 및 연구개발 강화, 바이오 보안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 등도 포함됐다.

삼성증권은 지원 규모를 근거로 대규모 상업용 생산이 아닌 소규모 기초 생산에 대한 지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초기 설비투자 및 유지비용을 고려하면 총 10억달러 지원으로는 미국 내 대량 바이오 생산시설 구축을 촉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상업용이 아닌 소규모 생산의 기술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일 것”이라며 “상업용 대량생산 중심의 위탁생산업체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증권은 CDMO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봤다. 앞으로 추가 발표될 내용에 따라 미국 내 생산기지 확보가 유리해진다면 증설 계획을 변동하는 등 충분히 대응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다.

박재경 하나증권 연구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 건설 비용이 약 1조7000억원임을 고려했을 때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규모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신영증권도 단기적으로는 영향이 미미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미국 공장 설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정유경 신영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기업들은 상당한 물량의 상업용 의약품 생산을 위탁하므로 미국 내 생산만으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공장부지 확보부터 생산 승인까지 최소 2년 이상 소요되기 대문에 현재 위탁 중인 물량에 대한 변화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생산을 포함한 다지역 생산 전략을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진원생명과학·지놈앤컴퍼니 “수혜 기대”

진원생명과학과 지놈앤컴퍼니 등 이미 미국에 생산설비를 확보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아직 구체적인 지원 방식이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다.

지놈앤컴퍼니는 작년 마이크로바이옴 CDMO 사업 진출을 위해 미국 CDMO 기업을 인수했다. 미국 자회사 리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는 대규모 생산 공장도 건립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작년 12월 3100만달러(약 432억원)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회사는 공장 완공을 위해 1000억원 이상의 추가 자금조달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대 10억달러를 바이오 생산 인프라에 투자하기로 한 바이든 정부의 정책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놈앤컴퍼니 관계자는 “공장을 짓고 수주받는 일이 중요한 상황에서, 미국에 거점이 있어 자금조달이나 장비 구입에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원생명과학은 자회사 VGXI를 통해 미국 텍사스주에 CDMO 생산 공장을 확보하고 설비를 확장 중이다. 메신저리보핵산(mRNA)의 원료인 ‘플라스미드DNA’를 만들 수 있는 설비다.

VGXI는 기존 공장 700ℓ에 더해 3000ℓ 생산능력을 갖춘 신규 공장 설비를 구축했다. 내달 7일(현지시간) 준공식을 개최할 계획이다. 추가로 짓고 있는 4500ℓ 설비는 내년 2분기에 상업 생산을 목표하고 있다.

진원생명과학 관계자는 “VGXI가 생산하는 플라스미드DNA는 이번에 지원 대상으로 밝힌 팬데믹 대응을 위한 원료의약품에 해당한다”며 “국내 CDMO에 비해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박인혁 기자 hy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