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집중탐구

삼수 끝에 승인받은 롤베돈 앞엔 경쟁약과 시밀러까지
항암신약 후보 포지오티닙은 11월에 결과 나와

R&D 노하우가 수익성 향상시켰지만…주가도 비싼 편
사진=한미약품
사진=한미약품
한미약품이 개발한 신약이 드디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문턱을 넘어섰습니다. 2015년 조 단위 기술수출 ‘잭팟’을 터뜨려 우리 증시에 ‘바이오 열풍’을 불러온 뒤, 상당수의 기술을 반환당하는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첫 깃발을 꽂은 겁니다.

7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요. 한미약품 주가는 호중구감소증 치료 신약 롤론티스(에플라페그라스팀·롤베돈으로 제품명 변경)의 미 FDA 시판승인 소식이 증시에 반영된 첫날에만 들썩인 뒤 내리막을 타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한미약품 주가는 28만4000원에 마감됐습니다. 증시가 급락세가 무섭던 지난 6월15일의 저점과 같은 수준으로 주저앉은 겁니다. 미 FDA는 지난 9일(현지시간) 롤베돈에 대한 시판승인을 내줬습니다. 한국 증시에 이 소식이 반영된 건 추석연휴 직후인 지난 13일입니다. 이날 한미약품은 직전 거래일 대비 8.11% 오른 32만6500원으로 거래를 시작했지만, 상승분을 0.99%만 남기고 반납해 30만5000원에 마감된 뒤, 반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초 이후 주가 등락률 추이. /자료=에프앤가이드 데이터가이드
연초 이후 주가 등락률 추이. /자료=에프앤가이드 데이터가이드

롤베돈, 작은 시장에 즐비한 경쟁약 제치고 수익낼까

신약을 승인받은 뒤의 주가 하락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승인 전에는 기대감에 주가가 치솟고, 승인 발표가 모멘텀의 소멸로 작용하니까요. 실제 글로벌 대형 학회나 임상시험 결과 발표를 앞두고 관련 바이오 종목들의 주가가 올랐다가, 이벤트가 종료된 뒤 상승분의 일부를 납반하는 걸 자주 봤을 겁니다.

문제는 롤베돈의 미 FDA 시판 승인을 앞두고 한미약품 주가가 크게 오르지도 않은 데다, 승인 이후의 하락폭도 상승분의 일부를 반납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저점보다 밑으로 내려갔다는 점입니다.

우선 주식시장의 측면에서 보자면 롤베톤의 FDA 시판승인은 ‘김 빠진 콜라’와 같습니다. 한미약품으로부터 롤베톤의 개발·상업화 권리를 사들인 파트너사 스펙트럼은 앞서 2018년과 2019년에도 FDA에 롤베돈에 대한 시판승인 신청을 냈지만, FDA의 자료 보완 요구로 자진 철회한 바 있습니다. 2020년 초 FDA가 롤베돈에 대한 시판승인 심사에 돌입했지만,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심사 과정 중 하나인 공장 실사가 미뤄지기도 했고요. 이미 한미약품은 2015년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잇따라 터뜨리며 ‘증시 스타’로 떠올랐지만, 이듬해부터 대부분의 후보물질에 대한 권리를 반환당하며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던 전력도 있고요.
[마켓PRO] FDA 신약 승인에도 주가 내리막 탄 한미약품, 왜?
두 번째 이유는 롤베돈이 얼마나 팔릴지에 대한 불확실성입니다. 롤베돈이 치료하는 호중구감소증은 화학항암제의 부작용으로 백혈구의 일종인 호중구가 감소해 면역력이 떨어지는 질환입니다. 엄민용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시장 규모를 37억달러(약 5조원)로 전망합니다. 글로벌 매출 1위 의약품인 휴미라(아달리무맙) 한 품목의 연간 매출이 320억달러 이상인 점과 비교하면 굉장히 작은 시장이죠.

이에 더해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시장은 이미 암젠의 뉴라스타(페그필그라스팀)이라는 약이 출시돼 있고, 이 약의 특허가 만료돼 바이오시밀러들도 나온 상황입니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8월 기준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시장 점유율은 뉴라스타가 13%, 뉴라스타 패치가 45.9%, 바이오시밀러가 40.8%”라며 “시장의 후발주자인 롤베돈에 대해 판매사 스펙트럼의 영업력으로 인한 우려가 크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한미약품의 롤베돈 생산 및 로열티 관련 초기 매출 성장은 다소 더딜 것”이라는 판단을 내놨습니다.

롤베돈이 처한 상황과 비슷한 사례를 국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일동제약이 2017년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받은 국산 28호 신약 베시보(베시포비르) 이야기입니다. 당시 B형간염 치료제 시장은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비리어드(테노포비르)가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었고, 비리어드의 특허를 회피한 복제약이 잇따라 출시되는 중이었습니다. 길리어드는 비리어드의 후속 제품인 베믈리디(테노포비르·알라페나미드·푸마레이트)를 내놨었고요. 이에 베시보가 식약처 허가를 받을 때부터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컸고, 실제 현재 베시보의 판매량은 국내 B형간염 치료제 시장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수준으로 평가됩니다.

R&D에 '진심'인 회사…항암신약 후보 승인 여부도 관심

주식시장의 우려와 달리 제약업계는 미 FDA의 문턱을 넘은 사례가 또 나왔다는 자체로 축제 분위기입니다. FDA가 세계적으로 가장 신약 승인이 까다로운 의약품 당국으로 꼽히거든요. 규제당국에 감정이 좋을 리 없는 업계 관계자들의 넋두리겠지만, 제약산업을 취재하다 보면 ‘한국 식약처는 미 FDA가 먼저 판단을 내려주기를 기다렸다가 따라한다’는 취지의 말을 자주 들을 정도입니다.

이런 FDA로부터 신약의 시판 승인을 받은 회사가 과거에는 대형 제약사 대열에 들지 못했던 한미약품이라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십수년 전만 해도 한미약품은 공격적인 영업에 따른 가파른 성장세가 돋보일지언정, 연구·개발(R&D)에 적극적인 회사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의약품 처방 관련 정책을 놓고 제약업계와 의사 사회 사이의 갈등이 커진 상황에서 한미약품이 큰 곤욕을 치른 게 지금은 고인이 된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이 적극적으로 R&D를 밀어붙인 계기였을 것이라고 한 대형제약사 임원은 추측합니다.

계기가 어떻든 한미약품의 R&D가 결실을 맺어가고 있습니다.

우선 주식 시장의 관심은 오는 11월 미 FDA 시판승인 여부가 결정될 항암신약 후보 포지오티닙으로 쏠립니다. 포지오티닙도 시판승인을 받아내면 한미약품은 한 해 동안 두 개의 미 FDA 승인 신약을 개발한 회사라는 수식어를 얻게 됩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던 2015년 기술수출 잭팟 이후 7년만에 화려하게 부활하는 셈이죠.

다만 포지오티닙도 과거 임상 실패를 겪은 바 있는 등 롤베돈와 마찬가지로 주식 시장에서 식상한 재료이긴 합니다. 항암신약이라 롤베돈보다 시장 규모는 크겠지만, 비슷한 기전(약이 몸 속에서 작용하는 과정)을 가진 다케다제약의 모보서티닙, 얀센의 아미반타맙 등이 이미 미국에서 승인된 상황입니다. 포지오티닙의 FDA 시판승인이 나온다고 가정했을 때 한미약품이라는 기업의 위상은 높아지겠지만, 주가 흐름은 이번 롤베돈 승인 이후와 비슷할 수 있다는 겁니다.

R&D 노하우로 처방의약품 1위지만…주가도 비싼 편

R&D의 결실이 꼭 신약으로만 나타나는 건 아닙니다. 국내 제약업계를 깎아내릴 때 자주 나오는 말이 ‘손쉽게 복제약만 만들어 판다’는 건데, 한미약품의 경우 R&D로 쌓은 노하우가 좋은 복제약을 만들어 낸 사례입니다. 한미약품은 국내 고혈압·고지혈증 치료제 시장의 최강자로 꼽힙니다. 특허가 만료된 치료제 성분 여러개를 한 알로 합친 복합제, 크기를 줄인 알약 등 개량신약을 개발한 덕분이죠. 한미약품은 작년 기준 처방의약품 매출 7420억원으로 4년째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켓PRO] FDA 신약 승인에도 주가 내리막 탄 한미약품, 왜?
다른 전통제약사들이 다국적제약사가 개발한 약을 도입해 유통하는 방식으로 외형을 키운 것과 달리 자체 개발한 제품을 판매하기에 한미약품은 제품 판매 수익성 측면에서도 경쟁사들을 압도합니다. R&D 비용이 반영되기 전인 매출총이익률이 2010년 이후 한 차례도 5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작년 기준 유한양행, 녹십자, 종근당의 매출총이익률은 각각 31.08%, 33.85%, 36.90%에 그칩니다.

다만 이런 점도 이미 주가에 반영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약품의 지난 16일 종가를 올해 연간 실적 전망치와 비교한 12개월 포워드 주가수익비율(PER)은 38.29배로 매출 규모 상위의 전통제약사 중 가장 높습니다. 심지어 바이오기업인 셀트리온(35.31배)보다도 비싼 수준입니다. 전통제약사들 중에서는 항암신약 렉라자(레이저티닙)에 대한 기대감이 큰 유한양행이 32.77배로 그나마 한미약품에 근접한 수준이고, 종근당(12.44배)은 3분의1에도 못 미칩니다.

📂한미약품 프로필(9월16일 종가기준)
현재 주가: 28만4000원
PER(12개월 포워드): 38.29배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 1451억6800만원
적정주가: 38만1429원(1년전)→36만7222원(현재)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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