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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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노래 들으며 안식처로 가소서(Flights of angels sing thee to thy rest).”

영국의 새 국왕인 찰스 3세는 지난 3일 버킹엄궁에서 진행한 첫 TV 대국민 연설을 이 문장으로 마쳤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이 구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사진)의 일부다.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2세만큼이나 영국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영토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대문호, 영국 문화의 뿌리다. 19세기 영국 평론가 토마스 칼라일은 “영국은 언젠가 인도를 잃겠지만 셰익스피어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와 더불어 4대 비극 중 하나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독백이다.

삶과 죽음, 존재 가치를 두고 고뇌하는 덴마크 왕자 햄릿은 남들 눈에는 그저 미치광이다. 사랑하는 연인 오필리어에게 “수녀원에나 가버리라”고, “결혼을 굳이 하겠다면 저주를 지참금으로 주겠다”고 폭언을 퍼붓는다. 실은 유령이 된 아버지를 만난 뒤 미친 척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그는 왕의 아들이자 조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왕좌를 차지한 숙부를 응징해야 한다. 이 가혹한 운명에서 연인을 멀찍이 떼어놓기 위해 위악을 부린다.

마침내 숙부를 죽일 기회를 얻고도 햄릿은 망설인다. 숙부가 기도 중일 때 죽이면 천국에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핑계도 댄다. “양심은 우리를 겁쟁이로 만든다.” 이후 햄릿은 예기치 못한 불행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다 끝내 숙부를 죽이고 자신도 숨을 거둔다.

“그 나머지는 침묵이네” 하고 죽어버린 햄릿처럼 <햄릿>은 시적인 문장들 덕에 매번 새롭게 읽히는 작품이다.

예컨대 햄릿이 진짜 미쳐버린 것인지를 두고도 해석이 갈린다. 시인 T S 엘리엇은 <햄릿>을 “문학의 모나리자”라고 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모나리자의 표정처럼 볼수록 오묘한 작품이라서다. 그래서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거듭 각색돼왔다.

파국으로 끝난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떠나보낸 영국 국민의 안식처가 됐다.

하지만 군주제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 21세기에 70대의 고령으로 왕좌에 앉은 찰스 3세에게는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 속 이 문장이 더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Uneasy lies the head that wears a crown).”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