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격리·노란봉투법…巨野 또 '입법폭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입법 주도권을 놓고 총력전을 선언하면서 후반기 정기국회 초반부터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민주당은 쌀 시장격리 의무화에서부터 노조 손해배상 청구 제한, 감사원 통제 강화 등과 관련된 법안을 밀어붙이며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여야가 민생 현안을 제쳐두고 정쟁에 골몰하면서 국회가 파행을 빚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정국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여야의 ‘입법전쟁’은 지난 1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위가 초과 생산된 쌀의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키면서 촉발됐다.

현행법은 정부가 임의로 판단해 초과 생산된 쌀을 적정 가격에 사들일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가격이 5% 이상 넘게 떨어지면 정부가 매입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여당의 반대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고 불법적으로 날치기 강행 처리됐다”고 반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1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일방적 국회 운영에는 절대 저희가 응할 수도, 협조할 수도 없다”며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처리할 경우 대통령께 거부권을 행사해달라고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에게 “국무조정실장에게 연락해 (민주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에 정부가 응하지 말 것을 다시 한번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민주당은 국민이 필요로 하는 일에 입법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사진)는 “식량 안보의 핵심 요소인 주곡 가격 유지를 위한 활동에 여야가 어디 있겠느냐”며 “속도전으로 국민의 뜻에 따라 주어진 권한을 최대치로 행사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양곡관리법은 전초전에 불과하고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여야는 이미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인해 생긴 손실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을 두고 뚜렷한 견해차를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과 관련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에 불과하다”며 법안 통과를 저지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겨냥해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은 물론 정부 행정입법을 통제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국유재산 처분을 제한하는 국유재산법 개정안, 감사원 통제를 강화하는 감사원법 개정안 등을 놓고도 충돌이 불가피하다.

민주당의 정부·여당을 향한 전방위적인 ‘입법 공세’는 이 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광주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쌀 시장격리 의무화 법안 통과를 공언하고 나섰다. 반면 자신을 둘러싼 의혹 수사와 관련한 발언은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는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민생 입법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지속적으로 윤 대통령에게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한 영수회담을 촉구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뚜렷한 입법 아젠다를 내세우지 못한 채 민주당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징계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두고 내홍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노동·연금개혁 등 윤 대통령이 공약한 의제마저 민주당에 선수를 빼앗겼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