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역사의 중심에 섰던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죽음은 새로운 냉전으로 치닫는 인류에게 큰 전환의 신호탄을 쏜 것만 같다. 영화 <희랍인 조르바(Alexis Zorbas), 1964>에서는 척박한 현실에서 자신의 자유 의지를 마음껏 펼치며 살아간 그리스인 조르바의 삶을 통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과 진정한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조르바는 "키스할 동안 다른 건 모두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 자네와 그 여자밖에 없는 걸세, 실컷 키스하게나"라며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3개 부문(미술상, 촬영상, 여우조연상:릴라 케도바)을 수상하였다] <영화 줄거리 요약>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밖에 모르던 젊은 지식인 버질(앨런 베이츠 분)은 유산으로 상속받은 갈탄광을 개발해 사업가로서 새로운 생활을 도모하고자 에게해 남쪽 크레타섬으로 출발한다. 아테네의 피레우스 항구에서 우연히 만난 60대의 그리스인 알렉시스 조르바(안소니 퀸 분)는 탄광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며 당당히 자신을 광산 채굴 현장의 감독으로 고용해 보라고 요구한다.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조르바는 이성적이고 이론적인 버질과는 사사건건 의견 충돌을 빚지만 책 속의 진리에만 갇혀있던 버질에게 생생한 삶의 체험이라는 자극을 주게 된다. <관전 포인트>
A. 영화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있나?
원제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으로 주인공 조르바는 1917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고향 크레타섬에 머물던 시절 자신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실존 인물 '요르고스 조르바스'와의 만남을 바탕으로, 실제 발칸전쟁에 참전했던 작가의 체험을 투영해 재창조된 인물이다. 이 작품은 카잔차키스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는 고대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를 비롯해, 앙리 베르그송의 자유 의지, 니체의 초인주의, 부처의 무소유 사상이 내포된 작가의 세계관을 잘 반영하고 있는 대표작이다.
B. 조르바는 어떤 사람이었나?
낯선 마을의 이방인처럼 겉도는 버질과는 달리 호방한 성격의 조르바는 카바레 가수 출신인 여관 주인 오르탕스 부인과도 스스럼없이 지내고 산투르 악기를 가지고 다니며 즉흥연주로 춤과 노래를 즐기기도 한다. 물레를 돌리는 데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손가락 하나를 잘랐을 만큼 초인적이고 기인 같은 면모를 보이는 그는 과거 각지를 유랑하면서 터키와의 전쟁에서 수 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했고 한 번의 결혼 후에도 제도에 속박되지 않은 채 만나는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어 왔다.
C. 크레타 섬의 모순된 사회 환경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처럼 보이는 크레타 섬에는 타락한 수도승들이 생활하는 수도원이 있고, 젊고 아름다운 과부 소멜리나와 그녀에게 은밀한 욕망을 품고 있는 마을 남자들이 살고 있다. 노골적으로 과부를 희롱하는 마을 남자들과 달리 신사적이고 친절한 버질에게 소멜리나는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망설이던 버질에게 조르바는 "사람이라면 약간의 광기가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감히 자신을 묶은 로프를 잘라내어 자유로워질 엄두를 내지 못해요"라며 과거나 미래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라"라는 충고를 들은 버질은 용기를 내어 소멜리나와 뜨거운 밤을 보내게 된다.
D. 마을의 비극의 시작은?
술과 여자에 빠져 버질의 사업 자금을 탕진하고 돌아다니던 조르바는 오르탕스 부인과 덜컥 결혼을 하게 된다. 그 무렵 과부 소멜리나를 짝사랑하던 마을 청년 파블리가 자살하게 되자 부활절에 교회 앞마당에서 마을 남자들은 과부에게 돌을 던지고 조르바가 제지하려 고군분투하지만 마을 장로이자 청년의 아버지가 소멜리나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E. 조르바가 전하는 삶의 메시지는?
소멜리나의 피살 이후 오르탕스 부인 또한 병에 걸려 죽게 된다. 집단적 광기와 침묵이 공존하는 마을에서의 광산 사업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빈털터리가 되지만, 조르바는 낙담하는 대신 양고기를 굽고 포도주를 마시며 시르타키 춤을 춘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무소유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몸소 실천하는 조르바로 인해, 버질 역시 양고기를 띁고 춤추는 여유 속에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현실이라는 굴레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던 조르바를 통해 버질은 진정한 자유의지의 의미를 깨닫고 감화된 것이다. <에필로그>
<희랍인 조르바>를 쓴 카잔차키스는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신성모독적 내용이라는 비판을 받아 출간이 정지되는 비운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그는 묘비문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며 삶에 대한 자유의지를 실천했던 조르바의 정신을 유산으로 남기며 쓸쓸히 떠났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물질적, 권력적인 만족감을 넘어선 조르바의 자유로운 삶에 큰 공감을 하게 된다. 조르바는 '앞날이 걱정된다고 했소? 난 어제 일은 어제로 다 끝내요. 내일 일은 미리 생각하지 않소. 나에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뿐이요"라는 명쾌한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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