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있다. / 사진=연합뉴스
18일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있다. / 사진=연합뉴스
신당역 살인 사건의 ‘여성혐오 범죄’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고인을 추모하고자 신당역을 찾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여성혐오 범죄로 보느냐는 취재진 질의에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답한 게 논란에 불씨를 댕기면서다.

여성단체는 당장 이튿날인 17일 신당역 앞에서 긴급 추모제를 열고 김 장관의 발언을 거론하면서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라고 반박했다. ‘불꽃페미액션’은 “일터에서 불법 촬영과 스토킹 범죄에 노출된 여성 노동자가 업무 중 살해당한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면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여성혐오 범죄 논의를 촉발한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관점이다. 신당역 표지판을 뒤덮은 포스트잇 등에는 특정 성별(젠더)에 대한 구조적 폭력이라는 인식을 명확히 해 당국이 재발 방지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랐다.

앞서 피의자 전모씨(31·구속)는 직장(서울교통공사) 여성 동료인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14일 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피해자를 살해했다.
신당역 사건 피의자 전모씨가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 사진=뉴스1
신당역 사건 피의자 전모씨가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 사진=뉴스1
젠더 폭력이라는 점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지만 여성혐오 범죄로 봐야 할지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혐오범죄 판정의 중요 요건 중 하나로 ‘피해자 대체가능성’이 꼽히는데, 혐오의 대상이 되는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될 수 있단 의미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 대상 묻지마 범죄’였던 2016년 강남역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 요건이 구성되는 반면 신당역 사건은 달리 볼 여지가 있다는 것. 이번 사건은 “피의자가 불특정 여성을 노린 게 아니라 피해자가 특정돼 일반적인 혐오 범죄 양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반면 여성 피해 사례가 대다수인 젠더 범죄의 경우 “언제 내가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여성들 공포감을 고려해 혐오 범죄 구성 여부를 보다 폭넓게 판단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여성계 일각에선 피해자 대체가능성의 핵심이 ‘집단(여성)으로서 느끼는 취약성’이므로, 신당역 사건 역시 여성혐오 범죄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