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이럴거면 인사 청문회 왜 있나
“온순하고 원만하며, 굵직한 사건을 처리한 다양한 경험과 뛰어난 역량이 있다는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일 이원석 검찰총장의 청문회에서 이 총장에게 내린 평가다. 실제로 이 총장은 다주택자였던 적도 없고 자녀는 정시로 대학에 입학했다. “평생 골프채 한 번 잡아본 적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총장의 인사청문 보고서는 채택되지 못했다. 도덕성과 업무수행 능력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수사를 거론하며 “이 후보자는 ‘윤석열 사단’ 특수통 라인 완성을 위한, 권력에 충성할 부하 검찰총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반대하면서다. 결국 윤 대통령은 16일 국회 청문 보고서 없이 이 총장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처럼 후보자에게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어도 정치적인 이유로 인사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만큼 청문 보고서 제출과 관계없이 대통령이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는 사태도 반복된다. 정치권에서 “이럴 거면 왜 인사청문회를 하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 관계자는 “점점 더 청문회가 정쟁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청문 보고서 불채택이 당연한 분위기로 굳어졌다”며 “특히 야당의 공세가 거센 검찰총장 청문회 같은 경우 누가 후보자로 나와도 청문 보고서 채택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거듭될수록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는 비율은 늘어나는 추세다. 역대 정부에서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거나 야당 단독으로 채택한 비율은 노무현 정부 6.2%, 이명박 정부 23%, 박근혜 정부 14.9%, 문재인 정부 35.8%로 늘어났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원 구성이 되지 않아 청문회 없이 임명됐던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 등 4명을 제외하고도 국회에 인사청문요청안이 제출된 25명 중 9명(36%)이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채 임명됐다.

전문가들은 인사청문회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여당을 할 때 막무가내식 인사청문 보고서 불채택 공세를 당하고, 야당이 되면 또 갚아주는 식”이라며 “점점 더 인사청문회 자리가 본연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정쟁의 장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안으로는 여야가 합의를 통해 인사 검증과 관련된 일관된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점점 더 인사청문회가 유명무실해져 가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인사청문회가 될 수 있도록 현행 시스템 개선을 위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