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여야, 이번엔 재정준칙안 통과시켜야
지난 13일 정부가 재정준칙안을 공개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관리하며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를 초과하면 적자비율을 2% 이내로 축소한다는 것이 골자다. 재정준칙을 도입하지 않으면 약 50년 뒤인 2070년에는 국가채무비율이 최고 GDP의 193%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국회예산정책처의 전망까지 있고 보면, 법제화로 구속력이 강화된 재정준칙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와그너의 법칙’으로 불리는 정부 예산의 지속적 팽창은 사실 관료, 정치인, 정권의 이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윌리엄 니스카넨 등이 지적했듯이 관료는 자신에게 떨어질 ‘떡고물’을 위해 국회로부터 배정받는 예산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이를 감시해야 할 소관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지역구 사업을 하나라도 더 얻어 가기 위해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한다.

이에 더해 정권은 인기를 위해 그리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이용하게 된다.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재정준칙을 도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료와 정치인 그리고 정권에 자율로 맡겨서는 재정의 무한 팽창과 적자재정을 막기 어렵기 때문에 법제화된 재정준칙을 통해 이들의 손발을 묶겠다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 비춰보면 정부안은 이해관계자들의 손발을 묶기에는 아직은 느슨한 면이 있다. 우선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한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여전히 늘어날 여지가 남아 있다. 또한 다수당이 원하면 얼마든지 법 개정을 통해 되돌릴 수 있는 우려도 있다. 독일과 브라질처럼 헌법에 포함시키거나, 재정준칙 개정에 절대다수(재적의원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하게 만들어 더 이상 손을 대기 어렵게 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 5년이 방만한 재정지출로 ‘재정적자 100조원, 국가채무 1000조원’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현 정부가 내놓은 재정준칙안은 재정건전성 회복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안타까운 현실은 이 느슨한 재정준칙안조차 국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현재의 야당들은 줄곧 확장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여당임에도 문재인 정부가 내놓았던 재정준칙 방안에 대해서조차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심지어 적자재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이비 ‘현대통화이론’을 들먹이는 의원들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하다. 윤석열 정부가 올해 총지출에서 6%를 줄인 내년도 예산안을 내놓자 이재명 신임 대표는 이를 “비정하다”고 했다.

이번 국회에서 재정준칙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문제는 단순히 재정준칙의 법제화 실패에 그치지 않을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야당이 적자재정 축소에 소극적이면 2024년 총선, 2027년 대선을 앞두고 여당 의원들마저 야당 입장에 동조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나아가 정부의 재정적자 축소 의지가 약화될 수도 있다. 언젠가 경쟁 정당이 집권해 돈을 펑펑 쓸 거라면 굳이 예산을 아껴 남 좋은 일 시킬 이유가 없다. 게다가 득표에는 돈을 쓰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었다. 빌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가 애써 균형예산을 달성했지만 이후 공화당 정부가 흑자를 탕진하자 다시 집권한 민주당 정부도 공화당 정부를 답습했다.

현실적인 과제는 어떻게 야당 의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손발을 묶는 법안에 동의하게 만들 것인가다. 정부여당이 설득 노력을 아끼지 않겠지만 목전의 이익이 걸려 있는 한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의 방법은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가 제안한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해가 분명히 드러난 상태에서는 어렵지만 이해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사회적 합의 도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5년 혹은 10년 후 시행을 목표로 재정준칙을 논의할 경우 의원들은 목전의 정치적 계산에서 조금은 벗어나 ‘국리민복’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은 반대하지만 그때쯤이라면 나하고 큰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