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은행권에서 카뱅이 유일
'무한 테스트'로 공들인 챗봇이 게임 체인저
카카오뱅크 챗봇형 주택담보대출과 한 대형 시중은행 비대면 주택담보대출의 금리구간이다. 같은 비대면 주담대인데도 이렇게 금리차가 나는 건 영업점 직원이 없는 인터넷은행의 특성상 원가가 낮기 때문이다. 대신 단점도 은행 영업점 직원의 친절한 응대가 없다는 점이 꼽힌다. 금융 용어를 잘 모르는 소비자들은 친절하게 안내해줄 은행원들을 카뱅에서 만날 수가 없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 담보인정비율(LTV)처럼 주담대에 꼭 챙겨야할 숫자를 계산하는 건 언강생심, 상당수 주담대 소비자들은 용어의 뜻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주담대는 신용대출에 비해 비대면화하기가 더 어렵다는 점도 카뱅이 출범한지 5년이 지나서야 출시한 이유로 꼽힌다. 용어도 그렇지만 대출 실행에 필요한 서류가 많다. 시중은행에서 주담대를 신청하려면 인감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초본, 인감도장, 신분증, 등기필증, 소득금액증명원, 매매계약서 등 총 15종의 서류가 필요하다. 이같은 서류를 관련 공공기관이나 사진으로 찍어올릴 수 있어야 주담대를 비대면으로 구현할 수 있다.
카뱅의 주담대가 우려를 샀던 또 하나의 이유는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기 시작하던 2월에 출시했기 때문이다. 일반 대형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올 들어 요지부동이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지난 1월 506조8181억원에서 지난 7월말 506조6804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이미 확고한 시스템을 갖춘 일반 대형은행에 맞서 편의성 만으로 경쟁할 수 있겠냐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었다. 2020년 10월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모든 대형 시중은행들이 비대면 주담대를 출시했지만 큰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카뱅이 주담대를 내놓은지 반년이 지난 시점에 카뱅과 대형은행의 희비는 완전히 엇갈렸다. 지난 6개월간 전체 은행권을 통틀어 주담대가 꾸준히 늘어난 건 카뱅이 유일하다. 카뱅 주담대는 출시된 지 5개월만에 누적 약정금액은 총 5500억원에 달했다. 3월말 1100억원, 4월 1700억, 5월 2260억원, 6월 3000억원, 7월 4240억원으로 매달 증가 추세다. 신규 고객과 함께 기존 대형은행의 대환 수요까지 흡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카뱅 자체 만족도 조사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들은 비대면 대출의 편의성을 꼽았다. 사실 챗봇은 어느 은행이나 카드사도 내놓은지 오래다. 카뱅의 챗봇이 다른 점은 주담대 실행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점이다. 가령 카드사의 경우 Q&A나 카드추천, 카드론 신청 등을 하나의 챗봇에 몰아뒀다. 반면 카뱅 주담대의 경우 목적은 오직 주담대 실행 하나다.
은행 창구직원과의 대화를 챗봇에
사실 5년 전에 이미 주담대 출시를 선언한 카뱅이 챗봇을 선택한 건 작년초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문재원 카뱅 주담대스튜디오 서비스셀 매니저와 유승근 주담대스튜디오 개발셀 매니저는 "챗봇이라는 아이템을 끌어내기까지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챗봇 기획 과정에서 "은행 창구에서 영업점 직원과 대화하는 흐름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려 했다"고 한다. 아직 집을 사지 않은 20대에게도 설문조사를 했다. '집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뭐가 가장 어려울 것 같냐'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연령대별로 모두 어떤 정보를 얻고싶어하는지에 주안점을 맞췄다.실제 대화형으로 챗봇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주목할만하다. 금융소비자가 챗봇에 조건을 입력하면 그에 맞춰 적용되는 시나리오도 바뀐다. 문재원 매니저는 "대출 단계별로 대화의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이 기존의 챗봇과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대출심사부터 실행까지 단계마다 챗봇이 알림으로 진행상황을 알려주기도 한다. "대화의 틀을 짜놓고 고객이 어떤 입력을 했느냐에 따라 그 다음 절차를 어떻게 진행할지 조건부로 판단하거나 용어설명 등의 말풍선이 뜨도록 한 거죠. 창구에 앉아서 은행원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답하는 것. 그걸 최대한 심플하게 구현하자는 게 최우선 목표였어요."
은행 영업점 창구직원과의 대화흐름이 그대로 반영될 수 있다면 오히려 챗봇은 은행 영업점에 비해 비교우위가 생긴다. 대화내용이 채팅창에 남아있어 고객이 상담받은 정보를 다시 영업점을 방문할 필요 없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주담대 이용자들이 가장 궁금해한 건 역시 한도와 금리다. 가령 현금은 2억원 들고있고, 연봉은 얼마인데 경기 분당의 한 아파트를 사려고 한다고 가정하면, 어느정도까지 한도를 내줄 수 있느냐가 세대를 아우른 궁금증이었다. 그래서 내놓은 게 챗봇에 내장된 가조회 서비스다. 자신의 연봉과 사고싶은 집을 입력하면 3분 안에 대출 한도를 보여준다. 아직까지 다른 은행의 경우 신용대출만 가조회가 만들어져있다는 점에서 카뱅이 최초로 선보인 서비스다.
추가상담 요청 고객은 5% 미만
챗봇으로 진행하다보면 정말로 직원과 대화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컴플레인이 발생할 수 있지 않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카뱅에 따르면 대출 신청 과정에서 챗봇 외 추가 상담을 요청한 고객의 비중은 5% 미만에 불과하다고 한다.주담대 신청과정에서 가장 힘든 게 서류 제출이다. 문 매니저는 "고객들이 대면서비스에서 가장 불편해하는 과업으로 꼽았다"고 말했다. 먼저 소득과 최초 주택 구입 여부, 결혼 여부, 주택 보유수 등을 입력하면 가조회로 금리와 한도를 보여준다. 이후 정식으로 대출을 신청하면 간편인증서와 스크래핑으로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 부동산 등기부 등본 등 서류가 대법원, 행정안전부 등을 통해 자동으로 제출된다. 추가로 필요한 부동산 매매계약서 등의 서류는 신청자가 사진을 찍어 올리면 마찬가지로 카뱅의 심사센터에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활용되는 광학문자인식(OCR) 기술은 카뱅의 금융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결국 대출을 신청한 소비자가 할 일은 카뱅이 요청한 매매계약서를 직접 찍어올리는 일이 전부다. 유승근 매니저는 "가장 까다로운 제출 서류는 세대원 정보제공 동의서"라며 "기존 금융사의 경우 모든 세대원이 은행에 방문해 처리해야하지만 본인명의 휴대폰 본인확인이나 간편인증서로 비대면화했다"고 설명했다. 소유권 이전등기가 필요하면 카뱅이 직접 인터뷰를 거쳐 협약을 맺은 법무사가 소비자를 찾아간다. 근저당권 설정 등기도 법무사가 맡는다.
'챗봇'을 만들기로 기획안을 확정짓고, 챗봇형 주담대가 정식 출시되기까지는 1년 가량이 걸렸다. 실제로 개발하는 데 걸린 시간은 6개월. 이후 6개월 간은 매일 테스트를 거쳤다. 유 매니저는 "주담대용 챗봇을 처음 만들기도 했고, 주담대 신청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더 많은 테스트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테스트 과정에서 다른 금융사와 다른 점은 은행 내부 신용정보를 다루는 계정계에서 작업하는 개발자부터 채널 개발자 등 모든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기획자가 그린 시나리오대로 구현이 돼있는지 다시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친다는 점이다. 그는 "따로 앉아서 테스트를 하는 것보다 직접 보면서 잘못된 부분을 즉각 확인하는 게 훨씬 빨리 진행이 되더라"며 "6개월간은 테스트의 '무한지옥'이었다"고 했다.
챗봇형 주담대는 작년 연말 내부 테스트를 통해 완성됐고, 소비자 20명을 대상으로 한 클로즈드베타서비스(CBT)를 거쳐 출시됐다. 카뱅은 처음에 수도권 아파트만 가능했던 주담대 가능지역을 6월 광역시, 지난달 전국으로 확대했다. 문 매니저는 "현재 아파트만 가능한 주담대를 다세대주택이나 연립주택 등 모든 종류의 주택으로 연내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