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관 이상만 13명 배출한 기재부…사무관들은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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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전성시대의 '두 얼굴'
대통령비서실장 등 정부 핵심
기재부 출신 대거 기용됐으나
내부선 인사적체 불만 쏟아져
"다른 부처 비해 업무는 많은데
승진 느려 15년 넘도록 사무관"
대통령비서실장 등 정부 핵심
기재부 출신 대거 기용됐으나
내부선 인사적체 불만 쏟아져
"다른 부처 비해 업무는 많은데
승진 느려 15년 넘도록 사무관"
“예전부터 알던 다른 부처 주무관(6급)이 얼마 전 서기관(4급)으로 승진했다고 인사 와서 너무 비참했다.”
지난 15일 기획재정부 내부망에 올라온 글이다. 기재부 사무관(5급)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글이 내부에서 화제가 됐다. 다른 부처 6급 공무원이 5급을 거쳐 4급으로 두 단계 승진하는 동안 기재부 사무관은 한 번도 승진하지 못했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이 글에 다른 기재부 직원은 “우리의 직업은 공무원이 아니라 사무관”이란 자조 섞인 댓글을 달았다.
13일엔 “추석 명절에 친척이 ‘넌 언제 승진하냐’고 물었는데 ‘저도 답답합니다’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사무관 두 분이 또 퇴직했는데 조직에서 미래가 안 보이니 나가셨을 것”이라는 글이 화제가 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잘나간다는 기재부지만, 내부적으로는 “조직 뿌리가 흔들린다”는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작 기재부 사무관들의 사기는 역대 최악으로 떨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사무관들 사이에서 ‘15년차 사무관’이라는 말이 회자하고 있다. 2008년 행정고시(52회)에 합격한 15년차 사무관 중 절반이 아직 서기관으로 승진하지 못하자 나온 푸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무관으로 12~13년가량 일하면 서기관으로 승진했는데, 이제는 더 늦어졌다.
다른 부처와 비교해도 차이가 많이 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행정고시 53회 대부분이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국토교통부에서는 57회,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58회 서기관이 나왔다.
인사적체는 사무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이사관(3급) 이상 고위 공직자도 마찬가지다. 기재부 내 주요 국장은 대부분 37회인데, 다른 부처는 이보다 두 단계 높은 차관이 주로 36~37회 출신이다. 심지어 중기부 차관은 38회(조주현)다.
기재부 내 최고 요직으로 꼽히는 경제정책국장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직무대행’ 체제다. 경제정책국장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만 할 수 있는데, 현재 기재부는 고위공무원단 정원이 꽉 차 경제정책국장 업무를 하고 있는 윤인대 국장이 정식 발령을 못 받았다.
가뜩이나 업무가 과도한데 인사적체까지 심해지면서 사기가 급격하게 떨어졌다는 게 기재부 직원들의 말이다. 최근 내부 게시판에는 “주말이나 심야, 새벽 가리지 않고 텔레그램(기재부 직원들이 주로 쓰는 SNS)을 보내는 상사가 너무 많아 힘들다”는 하소연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최근 일부 사무관이 기재부를 떠나 민간기업으로 이직하면서 직원들의 사기는 더 떨어지는 모습이다. 행시 54회 출신 사무관이 두나무로 이직했고, 다른 사무관은 네이버로 자리를 옮겼다. 기존에는 과장급 이상이 민간기업으로 떠나는 사례가 가끔 있었는데, 이제는 사무관들이 공직의 길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재부는 사기 진작을 위해 지난 19일 인사과장이 주재하는 ‘직원 애로 관련 간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승진 정원 확대 등은 기재부 차원에서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보니, 이날 간담회에서 박문규 인사과장은 “해외 유학 기회라도 최대한 늘려보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 부총리도 추석 연휴 직전 집무실을 개방해 원하는 직원들이 편하게 찾도록 하는 ‘오픈하우스’ 행사를 했다. 평소 사무관이 부총리를 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지적을 수용해 특별히 보고할 사안이 없더라도 편하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자는 취지다. 한 직원은 “새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기재부는 ‘기피 부처’가 돼가고 있다”며 “한국 경제를 책임지는 부처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지난 15일 기획재정부 내부망에 올라온 글이다. 기재부 사무관(5급)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글이 내부에서 화제가 됐다. 다른 부처 6급 공무원이 5급을 거쳐 4급으로 두 단계 승진하는 동안 기재부 사무관은 한 번도 승진하지 못했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이 글에 다른 기재부 직원은 “우리의 직업은 공무원이 아니라 사무관”이란 자조 섞인 댓글을 달았다.
13일엔 “추석 명절에 친척이 ‘넌 언제 승진하냐’고 물었는데 ‘저도 답답합니다’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사무관 두 분이 또 퇴직했는데 조직에서 미래가 안 보이니 나가셨을 것”이라는 글이 화제가 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잘나간다는 기재부지만, 내부적으로는 “조직 뿌리가 흔들린다”는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잘나가는 기재부에 무슨 일?
최근 고위직 인사를 보면 누가 뭐라 해도 ‘기재부 전성시대’다. 국무총리(한덕수)부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추경호),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조규홍), 국무조정실장(방문규), 금융위원장(김주현), 대통령 비서실장(김대기), 대통령실 경제수석(최상목) 등 요직을 기재부 출신들이 차지하면서다. 총리, 부총리를 포함해 대통령실과 내각에 장관급 이상만 6명, 차관급 이상으로 넓히면 13명이 기재부 출신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조용만)도 기재부에서 왔다. 여기에 기재부 1, 2차관은 물론 관세청, 통계청, 조달청 등 기재부 외청도 모두 기재부 인사가 독식했다. 일각에선 “당분간은 유능한 기재부 출신이 있어도 눈치가 보여서 중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하지만 정작 기재부 사무관들의 사기는 역대 최악으로 떨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사무관들 사이에서 ‘15년차 사무관’이라는 말이 회자하고 있다. 2008년 행정고시(52회)에 합격한 15년차 사무관 중 절반이 아직 서기관으로 승진하지 못하자 나온 푸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무관으로 12~13년가량 일하면 서기관으로 승진했는데, 이제는 더 늦어졌다.
다른 부처와 비교해도 차이가 많이 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행정고시 53회 대부분이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국토교통부에서는 57회,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58회 서기관이 나왔다.
인사적체는 사무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이사관(3급) 이상 고위 공직자도 마찬가지다. 기재부 내 주요 국장은 대부분 37회인데, 다른 부처는 이보다 두 단계 높은 차관이 주로 36~37회 출신이다. 심지어 중기부 차관은 38회(조주현)다.
기재부 내 최고 요직으로 꼽히는 경제정책국장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직무대행’ 체제다. 경제정책국장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만 할 수 있는데, 현재 기재부는 고위공무원단 정원이 꽉 차 경제정책국장 업무를 하고 있는 윤인대 국장이 정식 발령을 못 받았다.
추경호, ‘오픈하우스’ 행사 열었지만
다른 부처와 비교해 과중한 업무와 “한국 경제를 위해 밤낮, 주말 없이 일하자”는 조직 문화도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기재부는 부처 특성상 야근하거나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부처 중에서 기재부가 업무 강도가 가장 세다는 게 중론이다. 경제정책 방향, 세제 개편안, 예산안 등 굵직한 발표 전 담당 부서는 2~3개월 전부터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밥 먹듯 한다. 밤샘 근무도 심심치 않게 한다.가뜩이나 업무가 과도한데 인사적체까지 심해지면서 사기가 급격하게 떨어졌다는 게 기재부 직원들의 말이다. 최근 내부 게시판에는 “주말이나 심야, 새벽 가리지 않고 텔레그램(기재부 직원들이 주로 쓰는 SNS)을 보내는 상사가 너무 많아 힘들다”는 하소연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최근 일부 사무관이 기재부를 떠나 민간기업으로 이직하면서 직원들의 사기는 더 떨어지는 모습이다. 행시 54회 출신 사무관이 두나무로 이직했고, 다른 사무관은 네이버로 자리를 옮겼다. 기존에는 과장급 이상이 민간기업으로 떠나는 사례가 가끔 있었는데, 이제는 사무관들이 공직의 길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재부는 사기 진작을 위해 지난 19일 인사과장이 주재하는 ‘직원 애로 관련 간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승진 정원 확대 등은 기재부 차원에서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보니, 이날 간담회에서 박문규 인사과장은 “해외 유학 기회라도 최대한 늘려보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 부총리도 추석 연휴 직전 집무실을 개방해 원하는 직원들이 편하게 찾도록 하는 ‘오픈하우스’ 행사를 했다. 평소 사무관이 부총리를 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지적을 수용해 특별히 보고할 사안이 없더라도 편하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자는 취지다. 한 직원은 “새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기재부는 ‘기피 부처’가 돼가고 있다”며 “한국 경제를 책임지는 부처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