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 기업만 100여곳 코로나 끝나자 VC들 이 나라로 몰렸다

글로벌 '큰손'들이 벤처투자 혹한기에도 아시아 지역 스타트업 투자를 늘렸다. 1조원 이상 자산을 굴리는 국내 벤처캐피털(VC)도 잇따라 싱가포르에 진출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며 싱가포르가 금융 중심지로서 홍콩의 대안으로 부상한 데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동남아시아 서비스산업이 빠르게 회복될 것이란 기대에서다.

코로나 끝나자 VC 싱가포르 진출 이어져

22일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1조1000억원대 운용자산을 굴리는 다올인베스트먼트는 지난달 싱가포르 사무소를 열었다. 2000년 미국 실리코밸리에 다올벤처스를 설립하며 일찌감치 해외에 진출한 다올인베스트먼트는 2008년 태국 진출, 2019년 다올뉴욕 설립에 이어 이번에 싱가포르 사무소 개소까지 해외투자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김창규 다올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싱가포르는 비행기로 2~3시간이면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등 주요 시장이 닿기 때문에 아시아 스타트업을 발굴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며 “기존 핀테크 외에도 스마트팜, 푸드테크 분야 동남아 스타트업이 코로나 이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지난 4월, 운용 규모 1조2000억원에 달하는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11월 각각 사무소 열었다. 스틱인베스트먼트 2007년 중국 상하이 사무소를 열며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2008년 대만과 베트남, 2019년 인도네시아에 사무소를 연데 이어 올해는 싱가포르에 진출했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도 노크하고 있다. 영원무역홀딩스는 지난 3월 싱가포르에 영원무역홀딩스의 기업형 벤처캐피털을 설립했다. 1호 펀드 규모는 850억원 수준으로 동남아를 비롯해 미국, 유럽 등 해외 스타트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신청 기업만 100여곳" 코로나 끝나자 VC들 이 나라로 몰렸다 [긱스]

싱가포르 진출 1호 VC는 한국투자파트너스

국내 VC 중 싱가포르 진출 1호는 2조6000억원 규모 자산을 운용하는 한국투자파트너스다. 팬데믹이 발발하기 전인 2019년 10월 일찌감치 싱가포르 법인을 설립했다. 법인 설립 1년여만인 지난해 11월 펀드 운용 라이선스도 받았다.

김종현 한투파 싱가포르 법인장은 "한국모태펀드와 KDB산업은행을 중심으로 동남아 현지 VC가 운용하는 펀드에 출자를 많이 해오면서 한국의 벤처 자금에 대한 인지도가 상당히 생겨났다"며 “국내 벤처투자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탓에 ‘제2의 고젝, 그랩’이 될만한 동남아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진출하는 VC들이 최근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기반 인라이트벤처스는 싱가포르 현지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박문수 인라이트벤처스 대표는 “싱가포르 VC인 센토벤처스와 녹색기후기금(GCF) 공동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현지 법인을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해외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라이트벤처스는 연내 1억달러 자금을 모집한 뒤 푸드테크, 수자원, 스마트시티 등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국내 기술기업들이 동남아기업과 조인트벤처를 설립하면 이 펀드를 통해 투자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VC들이 몰리면서 싱가포르 현지 펀드 운용 라이선스를 신청한 회사들이 100곳 넘게 대기 중이라는 후문도 들린다.

아시아에 눈 돌리는 글로벌 큰손

글로벌 벤처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타이거글로벌, 세쿼이아캐피털, 글로벌파운더스캐피털 등 글로벌 '큰손'은 여전히 아시아에서 활발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벤처투자 정보업체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타이거글로벌은 올해 상반기 아시아에서만 72건의 거래를 완료했다. 지난해 상반기 27건에서 무려 167% 증가한 수치다. 타이거글로벌은 지난 1월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산업장비인 모그릭스에 2억5000만달러 규모의 시리즈 F를 공동 주도했다.

회계 컨설팅법인 KPMG 싱가포르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싱가포르의 핀테크 분야 펀딩 규모는 21억4000만달러로 3년 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결제 플랫폼과 암호화폐 분야 핀테크에 가장 많은 자금이 몰렸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핀테크 투자 규모는 418억달러로 미주 지역의 394억달러를 앞질렀다.

국내 VC의 해외투자 중심추도 중국에서 싱가포르로 옮겨갔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VC들이 싱가포르 스타트업에 투자한 규모는 793억원으로 미국(3510억원) 다음으로 많다. 2019년까지만 해도 중국(861억원)이 미국(1151억원) 뒤에 바짝 붙으며 VC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2020년부터 200억원대로 쪼그라들며 싱가포르, 인도, 이스라엘에 밀렸다.

동남아 진출 스타트업엔 교두보 역할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직원들이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토론하며 금융 앱을 개발하는 ‘DBS 해커톤’에 참여하고 있다. 한경 DB

국내 스타트업들도 싱가포르를 동남아 진출의 전진 기지로 삼고 있다. 국내 VC의 해외 진출이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화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핀테크 플랫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2019년 10월 베트남 법인을 세운 이후 지난 3월에는 싱가포르에 글로벌 헤드쿼터를 설립했다.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도 싱가포르의 가구 유통 플랫폼 '힙밴'을 인수하며 현지 진출했다. 최근엔 일본에 법인을 설립하고 일본어 버전의 홈 커뮤니티 서비스 '오하우스'의 시험 서비스를 출시했다.

KB금융그룹은 이날 싱가포르에서 'KB 글로벌 핀테크 랩'을 열었다.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고 동남아의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날 개소식에 맞춰 글로벌 진출을 준비하는 국내 스타트업 4개 사를 'KB 스타터스 싱가포르'로 선정했다. ▲고미코퍼레이션(글로벌 커머스 솔루션 기업, 이커머스 플랫폼 고미몰 운영) ▲센스톤(금융분야 인증 및 IoT 보안 솔루션) ▲웨이브릿지(금융·디지털자산, 금융상품 및 솔루션) ▲호라이존테크놀로지(AI금융투자 플랫폼 퀀트랙서비스 운영) 등 4개 사다. 싱가포르 현지에 사무공간을 제공하고 현지 사업화를 지(scale-up) 프로그램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