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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회사가 꼭 그룹 안에서 필요한 회사인지 모르겠습니다. 수직계열화 취지와도 맞지 않고요. 지금처럼 실적이 계속 좋지 않다면 그룹에서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미운오리새끼였습니다. 연간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던 때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앞날이 밝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내에서도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당시 만났던 현대로템 고위 임원은 현대로템이 더이상 현대차그룹 안에서 필요없는 회사같다고 푸념했습니다. 수년간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자 희망퇴직을 단행하며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갔습니다. 재무구조가 나빠지면서 회사 신용등급이 부정적(A-)등급까지 추락한 탓입니다.
[마켓PRO] 백조가 된 미운오리새끼…현대로템 3년 만에 이익 280% 폭증?

[마켓PRO] 백조가 된 미운오리새끼…현대로템 3년 만에 이익 280% 폭증?
'쇳물부터 완성차까지'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그룹 내 회사들을 수직계열화한 현대차그룹에게 현대로템은 생뚱맞은 회사였습니다. 지금은 현대차그룹이 대형 인수합병(M&A)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20년 전 한 철도회사를 인수합니다. 이 회사가 지금의 현대로템입니다. 인수 당시 사명은 '한국철도차량', 지난 1999년 대우중공업, 현대모비스(구 현대정공), 한진중공업이 각각 철도차량을 떼어내 통합한 합작사가 시작입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대우건설기계가 보유한 지분을 인수한 현대모비스는 한국철도차량의 경영권을 인수해 그룹에 편입시킵니다. 승용차와 상용차에 대해 철도사업까지 사업군을 갖춰 육상운송수단을 아우르는 모빌리티 그룹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한국철도차량을 인수한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에 있던 플랜트 사업과 중기사업 부문을 한국철도차량에 양도하고 본격적으로 자동차 부품 사업에만 주력하게 됩니다.

한국철도차량을 인수한 현대차그룹은 인수 후 6년이 지나서야 사명에 '현대'를 붙여줍니다. 그전까진 '로템'이란 사명을 썼습니다. 2007년에서야 현대라는 브랜드 파워를 갖게된 셈입니다.

현대로템은 그룹 내에서 크게 대접을 받진 못했지만 한국형 K1 전차 개발, KTX 국산화 등 철도·방산 사업에서 나름에 족적을 남겨왔습니다. 주력 사업 이외에도 현대차그룹의 세계 각지에 공장을 신규 건설하며 성장할 때 플랜트 사업을 담당하던 현대로템에게도 사업의 기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렇다할 수주를 따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회사는 악화일로를 걷게 됩니다. 지난 2020년 고강도 자구계획을 발표하게된 이유입니다.

[마켓PRO] 백조가 된 미운오리새끼…현대로템 3년 만에 이익 280% 폭증?
2022년 K방산이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미운오리새끼로 불려온 현대로템에게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K방산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분단 70년의 고진감래'라는 증권사 보고서까지 등장했습니다. 주가가 핫한 분위기를 나타내줍니다. 실제 현대로템은 최근 두 달 새 45%가량 주가가 급등했습니다.

지난 2018년에도 주가가 급등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에 남북 경협주가 급등하던 시기입니다. 현대로템 역시 남북철도 연결에 대한 부품 꿈이 반영돼 주가가 뛰었습니다.

최근 주가 급등은 성격이 다소 다릅니다. 우물안 개구리로 평가받던 현대로템이 해외에서 잇단 수주를 따내며 'K방산'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해외수주가 몰려오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코멘트가 줄을 잇는 이유입니다.
[마켓PRO] 백조가 된 미운오리새끼…현대로템 3년 만에 이익 280% 폭증?
실제 지난 7월말 폴란드 군비청과 K2 전차 긴급소요 및 폴란드형 K2 전차 980대 물량 등에 대한 기본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폴란드 국방부가 트위터를 통해 K2 전차 180대를 2022~2025년에 공급하는 계약이라고 밝히면서 내년부터 폴라드향 K2 전차 관련 매출이 본격화되고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습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K2 전차 완성품의 해외 첫 수출"이라며 "무엇보다 유럽 국가들은 신형 전차 도입에서 화력을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로 여기기 때문에 이러한 폴란드 수출로 계기로 향후 유럽수출의 교두보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이와 같은 해외 신규수주의 증가는 향후 매출 성장성 등이 가속화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익성 개선도 수반되면서 실적 턴어라운드가 가속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단순히 남북 경협주로 묶여 주가가 급등하던 '테마주'가 아니라 진짜 실력으로 승부를 하기 시작한 셈입니다.
[마켓PRO] 백조가 된 미운오리새끼…현대로템 3년 만에 이익 280% 폭증?
현대로템의 모태인 철도사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각국에서 신규 열차를 도입하는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정된 시장에서 파이를 나눠먹다보니 업체마다 출혈경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계약이 늘어도 실적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여전히 철도사업이 회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실적을 늘리려면 디펜스솔루션, 즉 방산사업이 커져야합니다. 최근 잇단 수주로 인해 투자자들이 현대로템에 몰려든 것 역시 정체돼있던 현대로템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실적 전망도 너무 밝습니다. 2019년 한 해 영업적자 2800억원에 달하던 현대로템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1279억원으로 전년 대비 60% 급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로템의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2369억원, 2024년에는 3075억원까지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이 같은 실적을 낸다면 미운오리새끼가 백조가 돼 완벽히 날아오르게 되겠죠.

전문가들은 "그동안 철도부문에 한정된 성장으로 주가가 정체를 보였지만 방산 부문의 수출 성장으로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목표주가를 4만원으로 제시한 신한금융투자 이동헌 연구원은 "방산부문이 내수 위주에서 수출 업체로 전환됐다"며 "안정되어가는 철도사업과 플랜트사업의 가치를 반영해 목표주가를 4만원으로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K2 전차의 매력을 숨길 수 없다"며 "폴란드 K2전차 공급 계약을 통해 당장 2023년 실적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후속 수주도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물론 단기간에 주가가 급등한만큼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목표주가를 상향조정하면서도 "최근 주가가 단기급등해 투자의견은 기존의 Hold를 유지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정 연구원은 "추가적인 상승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수주모멘텀의 유지강화가 필수적인데, 1차적으로는 폴란드 현지생산과 관련한 계약의 형태와 규모 및 시기 그리고 노르웨이 수출계약 성사여부(10월 중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예정)가 시험대가 될 전망"이라며 "현지생산의 경우 튀르키예 형태의 기술수출일지, 현지업체의 라이선스 생산일지, 합작법인 설립 후 공동생산일지 등에 따라 매출과 손익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현대로템 프로필(9월 21일 종가기준)
-현재 주가: 2만8850원
-PER(12개월 포워드): 37.66배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 1279억원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