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동원령 압도한 미국의 고강도 긴축...WTI 1.2% 하락 [오늘의 유가동향]
러시아의 동원령 선포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떨어졌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당분간 고강도 금리 인상을 계속할 것이란 뜻을 드러내면서 세계적인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Fed도 경기침체 가능성을 인정했다.

2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전거래일보다 1.19%(1달러) 하락한 82.94달러를 기록했다. 이틀 연속 하락세로 지난 7일 이후 보름 만에 최저치다.

유럽에서 거래되는 브렌트유 가격도 유럽ICE선물거래소에서 이날 전거래일 대비 0.87%(0.79달러) 하락한 89.83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8월 이후 다시 9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파월 Fed 의장의 발언이 유가 하락을 이끌었다. 지난 20~21일 이틀간의 FOMCE 정례회의 후 이날 Fed는 기준금리를 0.75%포인트(p)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기준금리는 3.00~3.25%로 높아졌다. Fed는 기준금리가 올 연말엔 4.4%, 내년엔 4.6%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6월 내놨던 전망치인 3.4%, 3.8%를 0.8~1%p 웃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0.75%p 금리를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은 이미 예상된 수순이었지만 이번 발표는 시장의 경기 침체 우려를 키웠다. 금리 인하가 내년까지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와서다. Fed가 정례회의 후 내놓는 점도표에 따르면 이번 회의에 참여한 위원 19명 중 6명은 내년 중 금리가 4.75~5%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중 금리 인하를 예상한 위원은 없었다.

이달 초만해도 Fed가 올 11월엔 기준금리를 0.5%p를 인상하면서 긴축 속도를 늦출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지금은 올 11월에도 0.75%p 인상이 이어질 것이란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파월 Fed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에 도달할 때까지 금리를 계속 올리겠다”며 “연착륙 확률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경기침체가 있을지, 만약 그렇다면 그 경기침체가 얼마나 심각할지는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노동시장이 탄탄하다는 입장은 바꾸지 않았지만 경기침체 가능성은 인정한 것이다.

WTI 가격은 이날 Fed 보고서가 나오기 전인 오전엔 86달러를 웃돌았다. 러시아의 동원령 선포 때문이었다.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기 위해 30만명 규모 예비군을 징집하는 부분 동원령에 서명했다. 하지만 Fed의 보고서 발표가 이 동원령의 영향력을 압도하면서 유가는 오후 들어 82달러 수준으로 폭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시장이 러시아의 전쟁 고조로 인한 공급 차질 가능성보다 경기 침체의 연쇄 효과를 우려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투자정보매체인 인베스팅닷컴은 “석유 거래자들은 이번 30만명 동원령이 러시아의 석유 수출에 미칠 위험이 이미 제재 조치로 고려된 잠재적 위험보다 클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주간 원유 재고가 3주 연속 증가했다는 점도 유가 하락을 부추겼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 10~16일 1주일간 원유 재고가 전주 대비 114만2000배럴 늘어난 4억3077만배럴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이날 미국 오하이오주 오리건에 있는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정유소에서 화재로 2명이 사망했다. 이 정유소는 BP가 소유한 미국 정유소 3곳 중 하나다. 이 화재로 인해 해당 정유소는 휘발유, 디젤 등의 미국 중서부 공급을 폐쇄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