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생명과 안전 최우선 의무…불필요한 위험 행위 자제 필요"
북, 코로나 유입 원인 '대북전단' 지목…김여정 "살포시 南 박멸" 위협도
자유·인권중시 尹정부, 대북전단 자제요청…현정세 등 고려한듯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해온 윤석열 정부가 23일 일부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 자제를 거듭 촉구하고 나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새 정부 출범 후 여권 일각에서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과 외부 실상을 북한 내부에 알리기 위해서는 대북전단과 같은 수단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이효정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브리핑을 열고 일부 탈북자 단체들이 주도해온 대북전단 살포를 자제하라며 공개 메시지를 냈다.

이 부대변인은 "정부의 거듭된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일부 단체의 대북전단 등 살포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며 "전단 등 살포행위를 자제해 줄 것을 재차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대북전단 살포 자제 촉구는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최근 밝혀온 견해와는 다소 결이 달라 보여 어떤 배경에 따른 것인지 궁금증을 낳고 있다.

권 장관은 지난 5월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대북전단 문제에 대해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작년 3월부터 시행된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부정적 견해를 나타낸 바 있어서다.

이를 두고 통일부 안팎에서는 그만큼 한반도 정세가 엄중하고, 대북전단이 남남갈등을 키울 소지가 있으며, 과거 보수정부에서도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한 전례가 있어 이런 메시지를 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자유·인권중시 尹정부, 대북전단 자제요청…현정세 등 고려한듯
이 부대변인이 "정부가 그간 민감한 남북관계 상황 등을 고려하여 대북전단 살포를 자제해 줄 것을 민간단체에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고 그 배경을 설명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정부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최우선 의무가 있다"며 "불필요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해당 행위의 자제를 재차 촉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부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강원·경기 접경지역 주민들은 생명과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2014년 10월 한 단체가 경기 연천에서 날린 대북전단 풍선을 향해 북한이 고사총을 발사해 군사적 긴장과 주민 불안감이 크게 높아진 것이 단적인 예다.

진보단체들은 최근 탈북민단체를 남북관계발전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는 등 대북전단 문제가 '남남갈등'으로 비화하는 조짐도 보인다.

통일부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지난 5월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에 전단 등 살포를 자제할 것을 완곡하게 요청했고, 7월에는 당국자 발언을 통해 공개적으로 자제를 촉구했다.

여기에다 '표현의 자유'와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 사이에 득실을 따졌을 때 후자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달 방한 기자회견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할 권리는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이나 안보상 이유로 제약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역대 보수 정부에서도 전단 살포를 막은 전례가 있다.

경찰은 2008∼2020년 북한의 대남 위협이나 지역주민과의 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12번의 살포 시도를 막았다.

금지 조치 12건 중 11건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조치였다.

자유·인권중시 尹정부, 대북전단 자제요청…현정세 등 고려한듯
정부의 전단 살포 자제 촉구는 윤석열 정부가 북한에 제시한 '담대한 구상'과 '이산가족문제 해결 등을 위한 당국간 회담 제의' 등과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우리 측이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진정성'을 북측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으론 핵무력정책 법제화 채택 등 대남 강경 노선 일변도로 치닫는 북한의 태도를 고려할 때 대북전단을 빌미로 대남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소재인 대북전단을 계속 뿌릴 경우 남북관계 상황은 계속 악화하고 도발의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어서다.

탈북민단체들은 최근 장마와 태풍 등 계절적 요인으로 잠시 전단 살포를 하지 않았지만, 오는 25일 열리는 제19회 북한자유주간을 계기로 북한을 규탄하는 움직임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로서는 대북전단이 또다시 변수로 부상하는 게 부담이 될 수 있다.

대북전단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해온 북한은 2020년 전단 살포에 대응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올해 들어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남측 전단을 통해 북측 강원도로 유입됐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10일 육성 연설에서 다시금 코로나19 유입의 대북전단 책임론을 제기하며 "만약 적들이 공화국에 비루스(바이러스)가 유입될 수 있는 위험한 짓거리를 계속 행하는 경우 비루스는 물론 남조선당국 것들도 박멸해버리는 것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남측 당국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할 경우 실제적인 보복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위협을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