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과학자들이 미·중 갈등의 여파로 미국을 떠나는 사례가 늘어났다. 중국계 과학 인재의 이탈로 미국이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미국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소속 학자들이 참여한 연구를 인용해 지난해 미국을 떠난 중국인 과학자 수가 전년(2020년 1162명)보다 21.7% 늘어난 1415명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수학, 자연과학, 공학, 컴퓨터과학 분야의 전문 인력 중 재직하던 미국 대학 또는 기업에 사표를 제출한 경우를 기준으로 했다. 이 중에는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야우싱퉁 교수가 포함돼 있다. 그는 지난 4월 하버드대를 떠나 중국 칭화대로 갔다.

중국인 과학자들이 단지 애국심 때문에 미국을 떠난 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중국은 과학 인재를 유턴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중국인 과학자 대다수는 조국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미국에 계속 머물렀다. 중국에서 학자로서 자유를 누리기 어렵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뒤 영주권 등을 취득했고, 미국 명문대에서 정년 보장 교수가 되거나 유수의 기업에 재직하는 등 탄탄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한 점도 이유였다.

WSJ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 시절 도입한 ‘차이나 이니셔티브’와 미·중 갈등이 최근 중국인 과학자들이 미국을 떠나게 된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차이나 이니셔티브는 중국이 미국 첨단 기술을 빼돌리는 데 관여한 기업 및 인사를 신속히 조사해 처벌하는 정책이다. 차이나 이니셔티브가 시행된 이후 중국계 과학자들 사이에서 ‘미국은 정치적으로 안전한 나라’라는 믿음이 무너졌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월 차이나 이니셔티브를 폐기했지만 미·중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중국계 과학자들의 불안감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중국인 과학자 이탈이 미국의 기술력 훼손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매크로폴로의 조사 결과 2020년 기준 미국 기관에서 인공지능(AI) 업무를 하는 인력 중 27%가 중국계였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 회장을 지낸 에릭 슈밋 미국 AI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중국 등 외국인 인력이 미국 국력의 원천”이라며 “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인구 대국 중국을 단절시켜선 안 된다”고 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