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파운드화 37년 만에 최저치…"패리티 시대 온다"
영국 파운드화가 지난 23일(현지시간) 1985년 이후 37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날 영국 정부가 발표한 대규모 감세 정책의 여파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유로에 이어 1파운드 가치가 1달러와 같아지는 ‘패리티’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23일 외환시장에서 달러·파운드 환율은 장중 3.7% 하락해 1.084달러로 밀렸다. 이후 낙폭을 일부 회복해 1.09달러선에서 장을 마감했지만, 24일 다시 1.0849달러로 떨어졌다. 영국 국채도 매도세가 몰리면서 금리가 폭등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5년 만기 영국 국채 금리는 23일 0.5% 포인트 올라 1991년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한때 세계 기축통화였던 파운드화 가치는 지난 5일 파운드당 1.144달러로 37년 만의 최저치를 찍은 후 수 차례 새 기록을 썼다. 이전까지는 강달러 영향이 컸지만 이날은 리즈 트러스 총리의 영국 내각이 발표한 총 450억파운드(약 70조5000억원) 규모 감세안의 직격탄을 맞았다. 영국 정부는 법인세 인상 계획 철회 및 소득세 기본세율 인하 등 감세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시장이 냉랭한 반응을 보인 건 정부 부채가 급증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영국 싱크탱크 재정연구소는 올해 영국 정부 부채 규모가 1900억파운드(약 293조5700억원) 이상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3번째로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영국은 신흥국 시장이 스스로 침몰할 때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주요국 중 최악의 거시경제 정책을 시행한 나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정치·경제적 도박”이라는 표현을 썼다.

파운드화 가치가 사상 처음으로 달러와 같은 수준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씨티그룹은 파운드화가 향후 몇 달간 1.05~1.1달러 사이에서 거래될 것으로 예측하며 패리티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네덜란드 은행 ING가 최근 산정한 연내 패리티가 발생할 확률은 17%로 6월(6%)의 3배 수준이다.

파운드화 가치의 폭락을 막기 위해 영국 중앙은행(BOE)이 더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도이체방크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음주에라도 BOE가 긴급 금리인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시장은 BOE가 현재 2.25%인 기준금리를 내년 8월까지 5% 이상으로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자산시장이 흔들리며 뉴욕증시도 하락했다. 다우존스는 23일 1.62% 떨어지며 3만선을 밑돌았다. 2020년 11월 이후 최저치를 썼다. 골드만삭스는 S&P500 지수의 연말 전망치를 기존 4300에서 3600으로 낮췄다. 23일 종가(3693.23)보다 낮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