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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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빌라(다세대·연립주택) 인기가 살아나고 있다. 아파트값의 절대적인 수준이 여전히 높은 데다 각종 규제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영향이다.

여기에 속도감 있는 주택 공급 확대를 내세우고 있는 정부가 정비 사업 활성화에 힘을 실어주면서 투자 목적의 수요도 몰리고 있다. 다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빌라의 경우 아파트에 비해 환금성이 떨어지고, 주택 경기 둔화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거주가 아닌 정비 사업 진행에 따른 차익을 기대한 ‘묻지마 식’ 매입은 주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파트 넘어선 빌라 매매 거래 비중

2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7월 서울의 빌라 매매 거래는 총 3206건으로 집계됐다. 전체 주택 매매 거래의 65.99%를 차지한 것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고치다. 같은 기간 아파트 매매 거래는 1028건으로 빌라의 3분의 1에 그쳤다. 아파트의 경우 전체 주택 매매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1.16%로 크게 낮아졌다.
아파트 '똘똘한 한채'마저 하향 조정…갑싼 서울 빌라에 몰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체 주택 매매 거래에서 빌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30~40%대에 불과했다. 1년 전인 지난해 7월 전체 주택 매매 거래에서 빌라가 차지한 비중은 48.27%였다.

하지만 올 들어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고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빠르게 치솟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은행이 잇따라 금리 인상을 결정하면서 대출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최근 2~3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크게 뛴 데다 금리 인상 기조에서 집값 하향 조정 가능성까지 높아지면서 무리하게 빚을 내 아파트를 매입하려는 수요가 크게 줄었다.

서울 영등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통상 주택 경기가 불안해졌을 땐 빌라에 비해 가격 변동 폭이 작은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며 “빌라 매매 거래량이 아파트를 웃돌고 있는 건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집값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서울 아파트값 평균이 11억4000만원에 달하고 있다”며 “실거주 목적인 경우 차라리 절대적인 가격대가 낮은 빌라를 활용해 내 집 마련에 나서려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거래 가뭄 속에서도 빌라를 찾는 수요자들이 꾸준하다 보니 가격도 조금씩 오르는 추세다. 8월 기준 서울 빌라의 평균 가격은 3억5339만원으로 지난해 말(3억5283만원)에 비해 소폭 올랐다. 올 들어 하락 전환한 아파트값과 대조적이다. 서울 잠실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과거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는 경기 악재들이 겹쳐도 가격이 굳건한 무풍지대였는데 올 들어선 알짜 단지에서도 수억원씩 떨어진 ‘급매’가 종종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10년 이상 된 역세권 빌라 눈여겨봐야”

정부의 정비 사업 강화 움직임도 이 같은 빌라 선호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는 임기 내 270만 가구 주택 공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비 사업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서울에선 구 단위로 재건축·재개발 전담 조직을 꾸릴 정도다. 과거에 비해 노후 주택지 관련 재건축·재개발 기회가 많아지자 빌라를 투자 대상으로 바라보는 수요자도 생겨났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 매수 심리가 위축된 와중에도 신속통합기획이나 모아타운 등 정비 사업 기대가 높은 지역의 빌라는 꾸준히 수요가 있다”며 “노후 빌라의 경우 저렴하게 매수해 장기 투자상품으로 가치가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빌라 인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실거주용이 아닌 투자 목적으로 매수를 결정할 땐 여러 조건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단 정비 사업에 대한 기대로 투자하려면 재개발 후보지에서 빌라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후도나 가구 밀집도 등의 요건을 미리 알아봐야 한다는 의미다. 지분 쪼개기 등 투기 세력을 차단하기 위해 정해 놓은 권리 산정 기준일도 확인해야 한다. 지은 지 10년 이상 됐고, 인근에 지하철역이 있는 역세권 빌라를 우선적인 투자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빌라는 전세가율이 아파트에 비해 높고 가격이 저렴해 투자가 용이한 특징이 있다”면서도 “정비 사업 등 호재가 없으면 가격 상승력이 약하고 일정 기간 자금이 묶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