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풀때마다 바흐 음악 나와
바흐의 화성은 수학처럼 정교
복잡한 음악의 공식 쉽게 풀어
바흐가 후대를 생각한 것처럼
영화속 주인공도 제자에게
어려운 문제 풀 용기 북돋아
지난 3월 개봉한 박동훈 감독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학을 다룬다. 어렵고 딱딱한 소재지만 영화 속 수학은 재밌고 편안하게 그려진다. 심지어 아름답게까지 묘사된다. 골치 아픈 수학을 부드럽게 해주는 ‘1등 공신’은 음악이다. 학성이 수학 문제를 풀 때마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사진)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가운데 1번 프렐류드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정갈한 곡이다.
그런데 영화는 왜 바흐의 음악을 선택한 걸까.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복잡한 수학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무반주 첼로 곡을 비롯해 ‘G선상의 아리아’ ‘골드베르크 변주곡’ 등 그의 음악 대부분이 단조롭다. 이유는 바흐가 가진 수학자적 면모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인류가 멸망해도 바흐 악보만 있으면 모든 음악을 복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전음악계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한 대사다. “세상의 음악이 다 사라진다고 해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만 있으면 복원할 수 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피아노의 구약성서’로 불리는 작품집이다. 바흐가 이 작품집을 내놓기 전까지 음악가들은 ‘순정률’을 따랐다. 순정률은 원래 음정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을 내기 위해 현의 길이를 3분의 2로 조정하는 조율법을 이른다. 하지만 순정률에 따라 연주하다 보면 오차가 발생한다. C장조에서 D장조로 바꾸는 등 조 바꿈을 하면 갑자기 불협화음이 난다. 바흐는 이를 바로잡기 위한 방안으로 ‘평균율’에 주목했다. 평균율은 한 옥타브를 정확히 열두 부분으로 쪼개 음을 똑같은 비율로 연주하는 방식이다. 평균율을 접목하면 조 바꿈을 하더라도 불협화음이 나지 않는다. 작품집 1권은 1721년, 2권은 20년이 지난 1741년에 나왔다.
바흐는 평균율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작품집을 냈고, 많은 음악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모차르트는 작품집을 접하고 난 후 작곡의 기초를 다시 공부했다고 한다. 쇼팽은 작품집에 담긴 48곡 전부를 외워서 칠 정도로 연습했다. 작품집 표지에도 이런 얘기가 적혀 있다. “간절히 배움을 원하는 젊은 음악가들이 활용하고 이득을 볼 수 있길 바라며.”
영화에서 학성은 자신의 제자에게 수학 잘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바흐가 젊은 음악가들을 위해 평균율을 전했다면 학성은 ‘수학적 용기’를 가르친다. 영화 시작부터 ‘세계 7대 수학 난제’ 리만 가설을 증명해버리는 수학 천재 학성은 이렇게 말한다. “야, 이거 문제가 참 어렵구나. 내일 다시 한번 풀어봐야겠다 하는 여유로운 마음, 그게 수학적 용기다.”
인생에도 수학적 용기가 필요하다.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는 여유, 내일 또 도전해 보겠다는 끈기 말이다. 바흐 역시 수학적 용기를 실천한 인물인 것 같다. 그의 음악이 단순하고 간결한 건, 수학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음악의 공식들과 꾸준히 마주하고 풀어나갔기 때문이 아닐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