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69.06p(3.02%) 하락한 2220.94를 나타내고 있다. 사진=한경DB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69.06p(3.02%) 하락한 2220.94를 나타내고 있다. 사진=한경DB
"이젠 더 탈 물도 없습니다." 26일 폭락장이 연출된 가운데 '물타기'(주가 하락 시 추가 매수해 평균 매입단가를 낮추는 일) 전략을 펴온 한 개인 투자자가 한 종목 토론방에 남긴 글이다.

검은 월요일이 펼쳐졌다. 이날 증권시장에서는 하락 때마다 매수세로 일관한 개인들이 실망 매물을 쏟아냈다. '하락장=개인 순매수'의 법칙이 깨지면서 결과적으로는 순매도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은 3거래일을 제외하곤 순매수세를 유지할 정도로 굳건한 매수 의욕을 보여왔다.

하지만 개인은 이날 2400억원 넘게 팔아치웠다. 개인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도로 출발했다가 정오께를 전후해 잠시 순매수세를 보였지만 이내 순매도세로 돌아섰다. 결국 증시하락에 따른 실망매물과 반대매매 압력 등이 개인 매도세를 부추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은 증시와 환율 모두 크게 출렁인 하루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69.06포인트(3.02%) 밀린 2220.94로 장을 끝냈다. 종가 기준으로 2020년 7월 27일(2217.86) 이후 2년 2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스닥지수도 2년 3개월 만에 700선을 밑돌았다. 지수는 전장 대비 36.99포인트(5.07%) 떨어진 692.37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가 700선 밑으로 내려간 것은 6월 15일(693.15) 이후 처음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로 치솟았다.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2원 오른 1431.3원에 마쳤다. 환율이 1430원을 웃돈 것은 3월 17일(1436.0원) 이후 약 13년 6개월여 만이다.

수급을 살펴보면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과 외국인은 각각 2449억원, 58억원어치 팔아치웠고 기관은 2793억원어치 사들였다. 코스닥시장에선 외국인이 떠받치는 힘이 더 컸다. 기관과 외국인이 각각 846억원, 1239억원어치 순매수한 반면 개인 홀로 1912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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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실망매물의 측면이 가장 커 보인다"며 "신용을 사용한 투자자들의 경우에는 반대매매를 피하기 위해 기존 보유 종목들을 매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한 물량도 포함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일각에선 2000선도 위협받을 수 있단 의견이 제기된다. 박광남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날 증시에선 투매까지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간 시장을 떠받쳐온 개인들의 투자심리가 크게 꺾인 모습이 관측됐다"며 "금리의 절대적인 수준이 높게 유지될 것인 만큼 저가매수로 시장의 하단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섣부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연구원은 "녹록지 않은 매크로 환경을 감안할 때 증시가 지금 이처럼 빠지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며 "오늘의 증시 하락으로 반대매매 등 수급에 의한 추가하락까지 가능해진 만큼 2100선으로도 밀려날 우려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나증권에서도 코스피가 저점을 낮출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한 가운데 금리와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고환율과 고유가, 고금리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3고(高) 지수가 이달 현재 연중 최고치를 경신 중"이라며 "코스피가 2100 수준까지 조정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더해 유진투자증권은 내년에 코스피 상장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이 올해보다 5∼10% 줄어들면 코스피는 192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까지 내놨다.

이 증권사 허재환 연구원은 "국내는 기업이익의 변동성이 높지만, 경기 침체 강도가 완만하고 환율효과가 어느 정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내년 기업실적이 올해와 비슷하다면 코스피 적정 수준은 2100∼2300으로 계산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내년 코스피 기업들의 EPS가 올해보다 5∼10% 감소한다고 가정하면 코스피 적정 수준은 1920∼2020으로 지금보다 11∼16% 하락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각종 종목 토론방을 통해 개인들은 "계좌가 마냥 흘러내린다" "이렇다할 호재가 예정된 것도 아니어서 시장이 어디까지 내릴지 두렵다" "파국이다,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본전만 찾으면 바로 팔겠다" 등 성토의 글들을 남겼다. 한편에선 "폭락 한 두번 겪는 것도 아니고 지금이 싸게 살 기회" 등의 의견도 보였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