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우려 확산과 영국의 대규모 감세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기감이 어제 한국을 덮쳤다. 원·달러 환율은 천장이 뚫린 듯 하루 만에 20원 넘게 치솟아 1430원대로 뛰어올랐다. 원·달러 환율 ‘1400원 지지’로 설왕설래한 게 불과 두 주 전 일인데 벌써 ‘1450원 고지’ 사수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블랙먼데이로 불릴 정도로 우울한 지표가 쏟아졌다. 코스피와 코스닥지수 낙폭은 각각 3%와 5%를 웃돌았다. 코스닥은 700선이 붕괴했고 코스피는 2200선을 위협받고 있다. 국채시장에서도 발작 현상이 나타나 3년물 금리가 10년물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심해졌다. 외국인투자자 움직임도 심상찮다. 역외선물환(NDF)시장에서 달러를 순매도하던 해외 투자자들은 지난달 올 들어 최대인 61억달러를 순매수하며 원화 약세에 베팅한 모습이다. 정부가 “환율보다 중요하다”던 대외 위험지표의 대표 격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지난 주말 하루 만에 12.5% 급등하기도 했다. 국제금융시장이 평가하는 한국 국가부도 위험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파운드화 가치가 37년 만에 최저로 추락하고 유럽과 미국의 주가·국채가격이 급락하는 등 지금의 시장 혼란은 세계 공통 현상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어제 우리 금융시장 모습은 말 그대로 패닉에 가까웠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블룸버그의 우울한 진단은 차치하고라도 코스피지수 낙폭이 아시아 주요 증시 중 가장 컸다는 점을 결코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불안이 증폭되는 것은 외환·통화당국의 안이한 인식과 실기로 유효한 정책수단마저 무력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어제 원화가치 폭락은 국민연금과 한국은행 간 통화스와프 체결, 조선사 선물환 매도 지원책이 나온 직후의 일이다. 총 180억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수급개선책이 전혀 약발을 받지 못할 정도라면 정부와 원화에 대한 신뢰 추락은 점점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정부 표현대로 대외부문 건전성은 절대적인 측면에선 여전히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구매력을 고려한 실질실효환율로 보면 원화 약세 현상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진 않다. 하지만 “환율이 펀더멘털과 과도하게 괴리되면 안정 조치를 적기 시행하겠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식의 느슨한 메시지로는 시장의 패닉을 가라앉히기에 미흡하다. 발언 하나에서부터 정책 디테일까지 비상 상황에 걸맞은 당국의 비상한 대처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