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인 ‘달리(DALL-E)’가 그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이미지와 텍스트를 입력하면 화풍, 그림자, 빛이 들어오는 방향 등을 분석한 뒤 주변 배경을 알아서 만들어준다.  오픈AI 제공
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인 ‘달리(DALL-E)’가 그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이미지와 텍스트를 입력하면 화풍, 그림자, 빛이 들어오는 방향 등을 분석한 뒤 주변 배경을 알아서 만들어준다. 오픈AI 제공
세계 미술계가 인공지능(AI) 기술로 시끄럽다. ‘AI가 그린 그림을 예술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커지는 상황에서 ‘AI 창작물’의 저작권 논란까지 불거졌다. AI가 예술가 역할을 대신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6일 미국 미술전문 매체 아트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사진 공유·판매 사이트인 게티이미지의 크레이크 피터스 최고경영자(CEO)는 “달리(DALL-E) 등 AI가 만든 이미지는 저작권 초상권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이들 이미지에 대한 업로드와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고 말했다.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은 개인 블로그나 뉴스 사이트 등에 올라온 이미지를 긁어모아 학습한 뒤 알고리즘을 만든다. 이를 토대로 사용자가 제시어를 입력하면 몇 분 만에 수십 장의 그림을 그려낸다. 창작 과정에서 저작권과 초상권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AI가 만든 이미지를 사고팔 경우 업로드한 사람은 물론 다운로드받은 사람도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게티이미지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최근 들어 AI 프로그램을 활용한 창작물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후원하는 AI 연구단체 오픈AI가 지난해 AI 프로그램 달리를 선보인 후 구글(이매젠), 메타(메이크어신) 등 글로벌 빅테크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잇달아 내놨다. 텍스트나 간단한 스케치를 입력하면 쉽게 사실적인 그림을 창작할 수 있다.

일각에선 AI 프로그램의 학습 알고리즘이 예술가들의 작품을 ‘무단 표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디즈니, 워너브러더스 등에서 일한 아트디렉터인 제이슨 후안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현행 저작권법이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AI가 만든 작품을 사용하기 전에 저작권을 명확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AI가 만든 그림을 예술로 볼 것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은 현재진행형이다. 논쟁에 불을 지핀 건 지난달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주립미술대회에 출품된 ‘스페이스 오페라극장’이다.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해주는 AI 프로그램 미드저니가 그린 이 그림은 대회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1등을 차지했다.

이후 트위터에서 “예술은 인간의 영역”이라는 주장과 “이제 AI를 예술의 영역에 포함해야 할 때”라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예술의 죽음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고 썼다. 다른 사용자는 “AI가 이미지를 생성했다고 어떻게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느냐”고 했다. 뉴그라운즈 등 몇몇 온라인 예술 커뮤니티는 AI가 생성한 작품을 게시하는 걸 전면 금지했다. 이 작품을 출품한 게임기획자 제이슨 앨런은 “나는 그 어떤 규칙도 어기지 않았다”며 “예술에서 AI가 인간을 이긴 것”이라고 했다.

‘AI의 예술 침공’은 미술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소설·시 분야도 마찬가지다. 달리를 만든 오픈AI는 자체 개발한 대규모 AI 자연어 처리 모델 GPT-3를 활용해 시와 소설을 창작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간단한 텍스트를 입력하면 금세 단편 소설 하나를 완성한다. 이를 두고 문학계에서도 AI의 창작물을 인정해야 할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예술 분야에서 AI의 영향력 확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란 판단을 내놓고 있다. 포브스는 최근 ‘AI가 상업 예술로 오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할리우드 영화 끝부분에 나오는 크레딧의 95%는 애니메이션 등 시각디자이너들”이라며 “머지않아 이들의 작업은 AI 도구를 사용하는 비예술가로 대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